“지난해 말 나온 연구용역에선 용산기지 975동 건물 중 보존 가치가 있는 81동만 남겨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를 참고해 올해 말 공론화 과정을 거쳐 최종적인 용산공원의 틀을 짤 계획입니다.”(권혁진 국토교통부 도시정책관)
9일 용산미군기지 ‘캠프 킴’ 내 용산공원 갤러리 앞엔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반인과 기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최초 국가공원인 용산공원 부지를 둘러볼 버스투어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용산공원으로 탈바꿈할 용산 미군기지는 유독 외세에 의한 손바뀜이 잦은 곳이다. 흔히 용산으로 알고 있는 지명은 사실 일본군이 총독관저와 일본군 작전센터를 세우면서 인근 용산의 지명을 빌러 온 것으로 원래 둔지산(屯芝山)이다. 둔지산이란 지명 자체가 군량을 조달하기 위한 둔전(屯田)에서 비롯했다고 하니 옛날부터 서울을 지키는 주요 요충지임엔 틀림없다.
현재 미합동군사업무단부터 한미연합사령부, 미8군 본청, 일본군 작전센터, 조선 총독관저, 일본군 병기지창 터가 이곳 용산기지에 집약해 있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서울 군사 요충지 둔지산에 자리잡은 미·일 군사시설
용산공원 갤러리에서 기초적인 설명을 들은 일행은 버스를 타고 본격적인 용산기지 탐방에 나섰다. 순차적으로 평택기지로 이동하고 있지만 아직 미 대사관 직원의 주택단지가 있는데다, 주요 군 시설이 남아있어 신분 확인 절차만 2, 3차례 이어진다. 용산기지로 들어가는 24개 게이트 중 14번 게이트로 들어가니 일본군사령부로 썼던 건물이 보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3층 건물은 연 노랑빛 단촐한 외양이지만 저곳에서 한반도 지배와 대륙침략의 전략을 짰다고 생각하니 새삼 달라 보인다.
현재 주한미군 121 종합병원으로 쓰고 있는 총독관저 터를 지나 1909년에 지은 용산 위수감옥을 들렸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감옥으로 사용하다 해방 후 육군본부가 자리 잡으면서 한 때 육군형무소로도 활용했다. 일본강점기 건축의 특징인 붉은 벽돌로 지어 인근 건물과 다른 느낌을 준다.
정부는 용산공원을 조성하면서 이 같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남겨 문화시설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장에 동행한 권혁진 국토부 도시정책국장은 “지난해 말 용산공원 계획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가 나왔는데 전체 975동의 건물 중 역사적 가치가 있거나 그 외에도 가치가 있는 81개 동은 보존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 중 53동은 보존 여부를 추가로 검토하고 대신 나머지 건물은 모두 철거한다는 계획이다.
권 국장은 “다만 연구용역 결과는 참고자료에 불과하고 확정된 것은 아니다”며 “용산공원은 첫 국가공원인 만큼 최종계획안은 연말께 국민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통해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버스는 위수감옥를 뒤로 하고 둔지산 정상에 이르렀다. 야트막한 언덕 규모지만 기지 내 큰 건물이 없어 시야가 탁 트인다. 담장을 경계선으로 빽빽한 건물이 늘어선 시내 전경과 한적한 고궁 같은 용산기지 내 전경이 차이를 보인다. 이곳에 여의도 면적 크기인 약 243만㎡의 용산공원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담장 하나를 건너 소풍 나온 가족이나 산책과 조깅을 즐기는 시민의 모습이 마치 외국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건물 최소화로 국민 휴식공간 기대감…집값 호재 가능성도
국토부는 미군기지를 용산공원으로 개방하면 동부이촌동과 같이 기지를 둘러가야 했던 교통 불편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상습 정체 구간인 용산구의 교통여건도 개선된다.
미군기지 관계자는 “일단 기지를 연내 평택으로 이전할 방침이다”며 “그러나 일부 주요시설은 이전 부지 결정이 조금 더뎌지고 있어 이전의 최종 마무리 시점은 아직 확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버스투어는 일본군 병기지창 인근 벚꽃길에서 끝났다. 현장 투어에 참가한 김 모씨(65)는 “내가 어렸을 때 다닌 학교가 여기(병기지창) 담장 넘어 건너편”이라며 “안쪽에서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고 공원이 빨리 만들어져서 다시 한번 와보고 싶다”고 전했다.
용산기지 탐방을 벗어나 외곽을 돌아가는 길엔 다른 것도 눈에 띈다. 이미 기지 인근을 둘러싼 1층 상가는 둘 중 하나는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가 들어서 있었다. 앞서 진행하고 있는 크고 작은 재건축·재개발 및 용산역세권 사업에 더해 용산공원 개발도 인근 집값 상승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부동산 투자자는 입지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며 “그런 의미에서 용산기지 인근은 앞으로 공원조망권도 기대할 수 있는 만큼 가치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감정원이 매주 발표하는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지수에서 용산구는 1일 기준 108.9으로 서울 평균(106)을 넘어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높다. 매매가격지수는 2017년 12월 매매가를 100으로 잡고 변화 값을 측정한 지표다. 100이 넘으면 기준시점 대비 가격 상승, 100 미만이면 하락을 의미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용산지역에선 정부의 규제로 1~2년 내에 단기 투자 수익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5년 이상 장기적인 투자로 봤을 땐 용산공원 인근 입지와 인근 정비사업 수요의 시너지 효과가 매우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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