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 시도교육감들의 연합체인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올해 2학기 고3부터 적용되는 ‘고교 무상교육’에 대해 ‘교육청에 재원 부담을 지우지 말라’는 입장을 11일 발표했다. 앞서 협의회는 각 시도교육청 간 무상교육 재원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발표 일정을 여러 번 변경하는 진통을 겪었다. 교원 및 학교 단체들도 무상교육에 따른 교육 질 하락과 사학경영 자율성 침해에 대해 우려를 전하면서 고교 무상교육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 교육감協 입장문 수차례 번복, 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10일 오후 2시 고교 무상교육 ‘재원’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9일 정부와 여당이 올해 2학기부터 ‘고교 무상교육’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기로 확정하고, 여기에 필요한 연간 2조 원의 예산을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이 절반씩 부담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협의회는 “전혀 협의된 바가 없다”고 반발하며 10일 공식 입장을 발표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 각 시도교육감 사이에 의견차가 있어 조율 중이라며 발표 시간을 수차례 미루다가 결국 11일 오전 10시로 시간을 변경했다. 11일 당일이 되자 “12일 오전 10시로 잠정 연기하겠다. 계속된 연기는 교육감들의 고통 감내로 여겨 달라”며 계획을 번복했다. ‘고통’이라고 표현할 만큼 재정 분담 방식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난감하다는 뜻이다.
특히 전국에서 고교 학생 수가 가장 많은 경기도교육청이 문제였다. 경기도는 올해 2학기 고교 무상교육에만 795억 원을, 1∼3학년 전면 시행 시 약 4866억 원을 조달해야 한다. 수차례 입장문 발표 스케줄이 바뀐 이유는 막대한 재정 지출이 예상되는 경기도교육청의 동의를 얻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협의회 관계자는 설명했다.
결국 11일 오후 5시 40분경 협의회 측은 e메일을 통해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무상교육의 완성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충분한 협의 없이 교육청에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결정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전체 세금 중 지방교육에 전달되는 교부금 비율을 현행 20.46%보다 높이는 등 고교 무상교육 재원 대책을 제시해 달라”고 촉구했다.
○ “이미 무상교육 60%… 교육 질 하락 우려”
교육부는 “시도교육감들이 고교 무상교육을 교육감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재원을 분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고교 무상교육’을 실현하지 못한 나라였다. 이에 무상교육을 고교로 확대하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지만 한국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섣부른 정책 도입으로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저소득층 학생의 상당수는 시도교육청을 통해 학비 지원을 받고 있다. 자영업자나 영세 기업을 제외한 많은 기업이 고교생 자녀 학자금을 지원한다.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자녀들도 학자금 지원을 받는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약 60%의 고교생이 이미 무상교육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3년 내 고교 전 학년에 무상교육이 도입된다면 그동안 민간 기업이 임직원 복지 차원에서 감당했던 학자금을 국가가 다 맡아 주는 모양새가 된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고3→고2→고1’ 순의 단계적 도입이 아닌, 그동안 지원받지 못했던 자영업자와 영세 기업 임직원 자녀들 위주로 학비를 지원하는 ‘소프트랜딩’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단체들은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진보 성향인 ‘실천교육교사모임’은 10일 성명서를 통해 “무상교육 예산을 시도교육청 부담으로 돌린다면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도 “무상교육으로 인해 사학 경영의 자율성이 침해될까 우려된다”며 “재정 지원을 명분삼아 부당한 지시를 하지 못하도록 법률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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