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난해 상대전적 15승1패로 압도했던 LG 트윈스와 2019시즌 첫 3연전에서 싹쓸이 패배를 당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14일 잠실 LG와 3연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만난 김태형 두산 감독은 “그냥 우리가 진 것”이라는 메시지만 전달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울림이 있었다.
3연패는 없었다. 8-0의 완승이었다. 그 중심에 이영하(22)가 있었다. 두산 선발진의 막내는 어느 때보다 씩씩하게 자기 공을 던졌다. 개인 최다인 8이닝 동안 5안타 1볼넷 4삼진 무실점의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펼치며 2승째를 따냈다. 퀄리티스타트 플러스(QS+·선발투수 7이닝 3자책점 이하)도 데뷔 후 처음이었다. 7회까지 투구수가 79개에 불과해 완봉도 노려볼 만했지만, 8회 17구를 던지며 100구에 가까워진 터라(총 96구) 굳이 무리할 이유가 없었다. 이영하가 마운드를 지키는 동안 타선도 8점을 뽑아내며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앞선 2경기에서 단 2득점으로 침묵했던 아쉬움을 단번에 씻었다.
최고구속 147㎞의 빠른 공과 주무기인 포크볼(21개), 슬라이더(19개), 커브(1개)의 조합이 일품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기존의 그것보다 다소 커진 공인구의 변화로 인해 주무기인 포크볼 구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럼 손가락을 더 벌려서 잡아보자고 생각하고 실천으로 옮기니 괜찮더라.” 더불어 서드피치인 슬라이더도 더욱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이날 삼진을 솎아낸 결정구도 포크볼이 아닌 직구와 슬라이더 각각 2개였다. 삼진에 집착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맞혀 잡는 피칭을 하다 보니 아웃카운트는 손쉽게 올라갔다. 두산 내야진의 탄탄한 수비도 이영하에게는 큰 힘이 됐다. “(박)건우 형의 슬라이딩 캐치 등 수비의 도움이 정말 컸고, 포수 (박)세혁이 형의 리드와도 잘 맞았다.” 목소리에 진심이 느껴졌다. 김원형 두산 투수코치도 “말이 필요 없다. 완벽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영하는 지난해에도 LG전 6경기에 등판해 패배 없이 4승(평균자책점 5.00)을 정도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이날도 그 흐름을 이어갔다. 사실 팀이 앞선 2경기를 모두 내준 터라 부담이 클 법도 했지만, 이영하의 생각은 달랐다. “영웅 한번 돼보자”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침에 비가 와서 어수선했지만, 꼭 던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화요일(9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도 노게임이 선언돼 2이닝만 소화했다. 다음 등판까지 기다리는 기간이 힘들었다”고 웃었다.
애초 김 감독은 이영하의 계투 전환도 생각했다. 그러나 금세 이 계획을 철회했다. “젊은 투수가 보직을 옮겨다니면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선발투수로서 자기 몫을 충분히 해내고 있는 지금의 상황도 고려했고, 그 선택은 맞아 떨어졌다. 이날도 “이영하가 나무랄 데 없는 투구를 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영하는 “좋은 기회가 왔으니 어떻게든 잡아서 내 자리를 만들고 싶다”고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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