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추경 충돌]
“野 압박용 끼워넣기 증액” 지적에… 정부 “하반기 여유재원 남기려는것”
정부가 올 4월 국회에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 6조7000억 원 가운데 1조2000억 원에 해당하는 민생사업은 정부가 국회 승인 없이 자체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기금사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굳이 추경으로 할 필요가 없는 민생사업을 끼워 넣어 야당을 압박하려 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실이 10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추경에서 기금으로 집행되는 52개 사업 중 34개(65.1%) 사업은 국회 승인 없이 정부가 자체 증액이 가능한 사업이다. 34개 기금사업에 드는 예산은 1조2000억 원이다.
일반적으로 추경은 지난해 남은 세금 수입, 국채 발행, 기금 여유자금으로 재원을 충당한다. 이 중 국가재정법상 기금사업은 △국회 심사 단계에서 예산이 삭감되지 않았고 △추가 지출 규모가 원래 예산의 20%를 넘지 않는 조건을 충족하면 국회 승인 없이 정부가 자체적으로 지출금액을 바꿔 집행할 수 있다. 1000억 원짜리 기금사업의 경우 이 조건을 충족하면 200억 원 한도로 추가 지출이 가능한 셈이다.
올해 추경안 중 이처럼 자체 집행이 가능한 사업에는 경기 및 민생 대응 사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출되는 실업자 및 근로자 능력개발지원, 고용유지지원, 능력개발융자지원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 자체 집행이 가능한데도 국회 승인을 받으려는 것은 사업 총액을 늘려 하반기 이후 정부가 필요할 때 당겨 쓸 수 있는 돈을 더 확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 관계자도 “추경이 상반기에 추진되는 만큼 하반기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여유 재원을 남기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추 의원은 “정부가 여유 재원을 일부러 남겨뒀다는 것은 현재 추경이 경제 충격에 따른 긴급 대응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 셈”이라고 했다.
최근 추경 논란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정부는 당초 미세먼지 및 산불 대응을 추경의 명분으로 앞세웠다. 하지만 전체 추경 예산 6조7000억 원 가운데 미세먼지 및 산불대응 등 안전 관련 예산은 2조2000억 원(32.8%)에 그쳤다. 나머지 4조5000억 원은 수출시장 개척, 벤처창업 지원, 혁신인재 양성, 사회간접자본 확충, 실업급여 확대, 일자리 창출 등 본예산 책정 때 예산을 더 반영했어야 할 사업에 할애됐다. 경기가 예상보다 악화하면서 재정을 더 풀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추경 명분과 내용이 엇갈리면서 정치권 논란을 유발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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