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등학생 영준이(가명)는 ‘경찰·도둑 놀이’를 할 때 언제나 도둑 역할이다. 경찰 역할의 친구들이 쫓아오면 잡히지 않게 도망쳐야 한다. 친구들은 자신을 ‘체포’할 때마다 심한 욕설을 했다. 매번 가슴이 떨렸지만 계속 같이 놀고 싶은 마음에 싫은 티를 낼 수 없었다.
#2. 초등학생 미라(가명)는 단톡방(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갑자기 홀로 남겨졌다. 얼마 전부터 단톡방에 올라온 욕설과 놀림이 생각났다. 자신을 향한 메시지 같아 궁금했지만 이유를 물어보기 두려워 가만히 있었는데 친구들이 일제히 나가버린 것이다.
위 사례는 시민단체 등에 접수된 실제 학교폭력 사례다. 요즘 학교폭력은 물리적 폭력 대신 이처럼 언어나 따돌림의 형태로 나타나는 ‘정서적 폭력’이 많다. 27일 교육부가 발표한 2019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유형은 언어폭력(35.6%), 집단따돌림(23.2%), 사이버 괴롭힘(8.9%) 순으로 많았다.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학생 자살로 학교폭력이 큰 이슈가 됐던 2012년부터 매년 이뤄지고 있다. 1, 2차 모두 전수조사로 진행되다가 지난해부터 2차는 표본조사로 실시된다. 2019년 1차 조사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410만 명이 대상이었다. 실제 조사는 대상자의 90.7%(372만 명)가 참여했다. 언어폭력과 집단따돌림은 지난해보다 각각 0.9%포인트, 6.0%포인트 증가했다. 집단따돌림을 경험한 학생의 41.4%는 언어폭력, 14.7%는 사이버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반면 신체 폭행은 8.6%로 지난해보다 1.4% 감소했고 2017년부터 하락세다.
김승혜 푸른나무 청예단(청소년폭력예방재단) 본부장은 “스마트폰 보급 시기가 초등학교 2, 3학년으로 내려갔다. 단톡방 등에서의 욕설은 죄책감을 별로 못 느끼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2012년 조사 이래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던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2012년 1차 때 12.3%(17만2000명)로 최고치였다가 2016년 0.9%(3만9000명)로 떨어졌지만, 2017년 0.9%(3만7000명), 2018년 1.3%(5만 명), 2019년 1.6%(6만 명)로 올라갔다.
초등학생의 피해 응답률이 3.6%로 가장 높았다. 이는 지난해보다 0.8%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증가폭이 학교급 중 가장 컸다. 중학생 피해 응답률은 0.8%로 지난해보다 0.1%포인트 올랐고, 고교생은 0.4%로 지난해와 동일했다.
학교폭력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면서 학생들의 학교폭력 민감도가 올라간 영향도 있다는 해석이다. 이전에는 코뼈나 팔이 부러져야 학교폭력이라고 인식했지만, 이제는 말로 괴롭히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중고교생은 학교폭력 문제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면 입시에 불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하지만 초등학생은 그렇지 못한 탓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가해’ 비율도 전체의 0.6%(2만2000명)으로 지난해(0.3%·1만3000명)보다 증가했다. 가해 응답률은 2012년(4.1%) 이후 꾸준히 감소세였지만 6년 만에 증가했다. 초등학생의 가해 응답률이 1.4%로 가장 높았다.
교육부는 하반기에 2차 실태조사까지 마무리한 뒤 12월에 제4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2020~2024년)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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