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7시. 오늘도 잠든 지 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눈이 떠졌다. “계속 누워 있고 싶다”는 혼잣말도 잠시. 옷을 갈아입은 이동수(가명·33) 씨는 곧장 집을 나섰다.
이 씨가 향한 곳은 서울 성동구의 A프랜차이즈 고깃집. 가게 앞에는 냉장고기를 실은 트럭이 와있다. 고기를 받아 가게 냉장고에 넣으니 오전 9시.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고 집으로 돌아와 누웠지만 1시간 만에 눈을 떴다.
“장사 시작한 후론 하루 서너 시간밖에는 깊이 못 자겠더라고요. 신경 쓸 게 많아 예민해진 탓인지….”
이 씨는 지난해 4월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어 고깃집을 시작했다. ○ 1주 74시간 일하는 ‘청년 사장’
오후 3시 다시 가게로 향했다. 문 열기까지 두 시간 남았지만 고기를 손질해야 하는 지금부터가 분주하다. 고기는 약 40인분. 장사가 잘될 땐 70인분까지 준비해야 해서 가게 출근시간은 그만큼 더 앞당겨진다.
같은 프랜차이즈 다른 매장에서는 직원이 함께 손질하지만 이 씨 가게에는 전담 직원이 없다. 지금이야 능숙해졌지만 처음에는 새벽까지 고기를 붙잡고 씨름했다. 동이 튼 뒤 귀가하면 칼을 쥐었던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을 고용하지 않았다. 인건비 부담이 커서다.
그 대신 오후 5시부터 밤 12시까지 서빙하는 아르바이트생만 서너 명 썼다. 오후 3시부터 이튿날 오전 1시까지 영업시간 내내 가게를 지키는 건 이 씨뿐이다. 정기휴무는 없다. 이날처럼 고기가 오는 날에는 오전에도 나와야 한다. 이렇게 1주일간 74시간을 일한다.
통계청이 지난달 집계한 국내 자영업자는 567만5000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이 씨처럼 직원을 쓴 자영업자는 일주일 평균 51.6시간, 그렇지 않은 자영업자는 52.8시간을 일한다. 직장인 평균 근로시간인 42.6시간보다 9∼10시간 더 많다. 현실은 통계보다 훨씬 고되다. 그래도 “저녁에만 바쁜 장사라 다른 가게에 비하면 편하다”고 이 씨는 말했다. ‘주 74시간’은 힘든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얘기다.
아르바이트생에게 가게를 맡기고 쉴 법도 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이들이 출근한 뒤에도 이 씨는 눈에 띄는 곳에 행주가 있진 않은지, 자리는 잘 정리됐는지 구석구석 살핀다. 이날도 10시간 동안 앉아 쉰 시간은 고작 30분을 넘었다.
“전에는 PC방을 했어요. 창고에서 쪽잠을 자며 생활했는데 샤워하러 집에 간 사이 아르바이트생이 손님과 시비가 붙어 소동이 벌어진 후로는 잠깐 외출도 불안해졌습니다.”
개업하고 1년 5개월간 이 씨는 단 이틀 쉬었다. 여름휴가로 평균 4.1일을 쉬는 직장인은 다른 나라 얘기다. 가끔씩 지칠 때면 문을 닫고 쉬고 싶지만 혹여나 그때 찾았다가 헛걸음한 손님이 가게에 나쁜 이미지를 가질까 걱정이다.
“나라에서 자영업자 모두 한 달에 이틀 쉬라고 강제했으면 좋겠지만…. 월세도 비싸니까 하루라도 더 벌어야죠.” 59m²(약 18평) 남짓한 가게 임차료는 월 300만 원이다.
○ ‘워라밸’을 갈아 넣는 자영업자의 삶
PC방을 하기 전에는 회사원이었다. 첫 직장에선 군대식 문화에 적응을 못 했고 계약직으로 들어간 다음 회사에선 정규직 전환이 안 됐다. 세 번째 회사마저 사정이 나빠지자 이 씨는 장사를 결심했다. 여가시간 없이 주 74시간 노동하는 그의 현재 순소득은 대기업 연봉 수준이다.
“대기업이 아닌 회사 생활도 불안정하더라고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생각하면 회사 다닐 때가 낫긴 하죠. 직장인은 그래도 주말은 쉬잖아요.”
미혼인 그의 유일한 낙은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축구다. 사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피곤할 법도 하지만 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매주 참석한다. 대학생 때 그는 일주일에 네댓 번씩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질 만큼 사람을 좋아했다. 딱 이틀 가게 문을 닫은 날에도 이 씨는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가족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당분간은 유예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워라밸을 (일에) 다 갈아 넣고 있지만, 나중에 결혼하면 가족과 놀면서 지낼 거예요. 젊을 때 부지런히 벌어 가족을 편하게 해주는 게 꿈입니다.”
오후 11시 반. 아르바이트생들을 30분 일찍 퇴근시킨 이 씨는 주문 마감시간인 밤 12시까지 텅 빈 가게를 지켰다. 마감 후에도 뒷정리하느라 다음 날 0시 35분이 돼서야 가게를 나섰다. 이 씨 가게에 불이 꺼지자 거리는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서울시내 다른 번화가와 달리 간판에 불이 들어온 곳이 이 거리에는 거의 없었다. 최근 길 건너 상권이 번화하면서 이 씨 쪽 동네는 ‘죽어가는 상권’이라는 말이 돈다. 그의 가게는 비교적 잘되는 편이지만 매출은 하락세다. 이 씨는 “가맹 계약이 끝나는 7개월 뒤에도 여기서 장사를 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씨가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게를 시작하며 가까운 곳에 얻은 집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2분. 이 씨의 ‘일’과 ‘삶’은 같은 공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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