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적 청탁’ 인정 부족하지 않다” 국정농단 판결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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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8월 30일 16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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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News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News1
‘국정농단’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이 파기환송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인 ‘삼성 승계작업’ 실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원심과 달리 다시 바뀐 이유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원심은 ‘부정 청탁 대상’이 되는 승계작업을 인정할 수 없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승계작업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부정한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통령의 포괄적인 권한에 비춰 보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묵시적 부정 청탁’을 인정하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날(29일) 이 부회장이 ‘승계작업’이라는 부정한 청탁을 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한국동계영재스포츠센터 지원금 합계 16억2800만원을 뇌물로 건넸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이 자신의 승계작업에 도움을 줄 만한 위치에 있는 박 전 대통령에게 대가성 있는 뇌물을 줬다고 인정한 것이다. 승계작업이라는 현안이 없었다는 2심 판단을 완전히 뒤집는 결과였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부정 청탁 여부는 이 부회장 사건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다. 특검이 판단한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서 이 부회장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승계 작업’과 이를 위한 부정 청탁이 주된 내용이었다.

특검은 ‘승계작업의 추진’을 이 부회장의 현안으로 정했다. 최소한의 개인자금을 사용해 삼성그룹 핵심계열사들에 대해 사실상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뜻한다고 명시했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승계작업은 각 계열사의 개별 현안을 오직 이 부회장의 개인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기 위해 특검이 고안한 가공의 틀에 불과하다”며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1심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지원요구에 응함으로써 승계작업에 관해 묵시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명시적 청탁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묵시적인 부정 청탁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이 판단은 2심에서 뒤집혔다. 2심은 “승계작업은 부정한 청탁의 대상으로서의 의미가 있어 그에 대한 당사자들의 인식도 뚜렷하고 명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고, 박 전 대통령이 승계작업을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며 “두 사람 사이에 승계작업을 매개로 영재센터를 지원한다는 묵시적인 인식과 양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3심은 1심 재판부의 판단을 지지했다. 부정한 청탁은 묵시적 의사표시로도 가능하고 청탁의 대상인 직무행위의 내용이 구체적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부정한 청탁의 내용도 박 전 대통령의 직무와 이 부회장의 영재센터에 대한 자금 지원 사이에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한데 대통령 권한에 비춰 보면 영재센터 지원금은 대통령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대법원은 원심이 이러한 내용을 제대로 심리·판단하지 않고 이 부회장 등에 대한 뇌물공여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했다고 지적하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과 공모관계에 있는 최순실씨에 대한 선고에서도 ‘승계작업이 존재하고 이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본 최씨 항소심 재판부 판단을 정당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삼성전자·삼성생명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권 강화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삼성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승계작업을 진행했다”며 “이런 뚜렷한 목적과 성격을 가진 승계작업에 관해 대통령의 권한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반대로 삼성 승계작업을 인정하지 않아 영재센터를 뇌물로 보지 않은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 판단에 대해서는 “원심의 판단에는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하급심에서 판단이 엇갈렸던 삼성 승계작업 실체와 함께 말 3마리의 뇌물성도 인정되면서 이 부회장의 뇌물제공 액수는 항소심보다 50억원이 늘어 다시 열릴 2심에서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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