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입시 의혹이 불거진 뒤 서울 강남 대치동 입시컨설턴트와 나눈 대화다. 지금이라면 조 후보자의 딸은 제1저자로 오른 의학 논문을,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딸은 인도 대통령 추천사가 적힌 저서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쓸 수 없다. 이처럼 입시제도를 계속 손질해도 반칙을 시도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란 뜻이다.
그는 교육부의 지침을 “하지 말라는 것만 빼고 다 하란 얘기”라고 해석했다. 여전히 아버지가 뭐 하시는지 등 ‘부모 스펙’은 통한다는 것. 부모 재력이나 인맥이 동아리나 진로 활동을 뒷받침하면 쉽게 ‘예비 과학자’ ‘예비 법조인’이 만들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조 후보자의 딸 입시 의혹과 관련해 “(조 후보자) 가족 논란 차원을 넘어서 대학입시제도 전반에 대해 재검토해 달라”고 했다. 교육부는 부랴부랴 차관 주재로 대입제도 개편 방안 회의를 열었다. 공론화를 통해 대입을 둘러싼 갈등을 얼기설기 봉합한 지 겨우 1년이 지났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면 슬쩍 대입 개편을 미룰 참이었는데 대통령 지시가 떨어졌으니 버틸 재간이 없다. ‘벌집 쑤시기’인 입시를 다시 만지려니 교육부로선 이런 날벼락이 없을 게다.
공정하고 단순한 입시. 문 대통령은 대입을 언급할 때마다 일관된 주문을 해 왔다. 이번 지시는 이를 뒤집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입시가 공정하려면 예측 가능해야 한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부모 스펙’이 빵빵한 아이들의 기회가 늘어난다. 부모의 경제·사회·문화 자본이 배합돼 최적의 결과를 낳은 조 후보자 딸의 입시 과정이 대표적이다. 그가 대학생이 된 2010학년도는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갑자기 확대되며 선발 인원이 10배 이상 늘었던 해다.
입시가 어떻게 요동을 치든지 부모 스펙을 갖춘 아이들은 대학에 간다. 정시 비율이 늘든, 수시 비율이 늘든 자신에게 유리한 전형을 찾아낸다. 여의치 않으면 해외 유학을 간다. 교육부의 교수 논문의 중고교생 공저자 실태 조사를 보면 2007년 이후 10년간 교수 102명이 논문 160편에 자신의 자녀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학생부에 논문 기재가 금지된 2014학년도 이후에는 그 수가 급감했다.
반대로 부모 스펙이 없는 아이들은 어느 입시에서든 불리한 게임을 한다. 일반고에선 학종으로 대학 갈 아이 한두 명에게 상이나 성적을 몰아준다. 특목고·자사고생이 아니거나 부모가 챙길 여력이 없는 아이들의 학생부는 텅 비어 있다. 수능 역시 사교육 도움 없이는 고득점이 어렵다. ‘100% 노력’만으로 아이 실력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공정한 입시란 공교육 내실화가 전제돼야 하고, 수년간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예측 가능해야 한다.
2일 사교육업체 주가가 일제히 고공 행진했다. 현 정부 들어 대입제도 개편이 혼선을 빚으면서 고1, 고2, 고3이 각각 다른 입시를 치르게 됐는데 또 바뀐다고 하니 그 불안을 파고든 것이다. 반칙을 한 사람을 퇴장시키면 되는데 경기 규칙을 공정하게 바꾼다고 한다. 앞으로 대입을 치러야 하는 학생, 그들을 키우는 평범한 학부모들은 정말 울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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