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타협[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6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신분석 초창기에 시작해 꽤 오랫동안 분석의 목표는 갈등의 해소였습니다. 갈등(葛藤)을 의식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이라고 정의합니다. 약간 더 들어가면 ‘두 가지 이상의 상반되는 요구나 욕구, 기회 또는 목표에 직면하였을 때, 선택을 못 하고 괴로워함’입니다. 이런 심심한(?) 정의로는 갈등 해소의 대책을 세우기가 막막해집니다.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갈등을 살펴보면 어떨까요? 그 정체는 훨씬 복잡하고 활동은 매우 교묘하게 이루어집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현실 판단력에 장애를 일으키며 심각한 정신질환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갈등은 대부분 무의식이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며 본능적 욕구와 소망이 저항과 금지와 충돌하면서 불안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불안이라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방어하는 과정에서 타협의 결과물로 증상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프로이트의 구조이론에 기반을 둔 갈등의 정체이고 그는 갈등을 해소와 제거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갈등은 주로 무의식에서 활동하며 무의식은 우리가 알기 어려운 마음이라면 분석과정에서 어떻게 갈등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정신분석 현장에서 분석가가 사용하는 ‘갈등 감지기’는 자유연상입니다. 정신분석이 진행되는 공간에서, 분석을 받는 사람이 그 시점에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모두 분석가에게 말하도록 하는 겁니다. 실제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분석가가 되려고 ‘교육 분석’을 받았던 경험을 돌이켜보아도 자유연상은 쉽지 않았고 늘 가능하지도 않았습니다. 감추고 싶은 것을 때로는 숨겼고 때로는 말하면서 수치심을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분석 비용을 내고 얻은 귀중한 시간이 계속 흘러가는 것이 초조하고 아까워서 되도록 자유연상을 하려고 애쓰기도 했습니다만. 그만큼 자유연상은 어렵고 그 역시 갈등을 일으키지만 떠오르는 생각을 숨기거나 모호하게 흐리면 분석의 대상인 갈등의 모습은 멀어집니다.

자라면서 겪은 부족함(정서적 결핍)을 보충하는 작업도 분석에 필수적이라고 판단하는 ‘자기 심리학’이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것의 영향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관계 정신분석학’이 힘을 얻으면서 정신분석학의 ‘갈등’이 차지하고 있던 독점적 위치는 다소 퇴색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갈등은 정신분석의 중심에 잡은 자리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정신분석학을 갈등 심리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갈등의 해소가 여전히 정신분석의 목표가 되어야 할까요? 프로이트 이후, 세월이 흐르고 현대 정신분석학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등이 전혀 없도록 마음을 관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마음에서 갈등을 전부 없애려고 노력하는 일 자체가 불필요한 심리적 저항으로 작용해 분석과정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 갈등의 정체를 이해하고 차라리 받아들이면서 타협책을 찾는 것이 더 낫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느끼는 상태가 갈등이라면 서로 충돌하는 사랑이나 미움 중 한쪽을 없애야 갈등이 해소되겠지만, 양가감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을 키우는 방향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갈등의 정체와 생겨난 의미를 이해하고 갈등과의 공존을 감당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갈등을 무조건 없애려고 애쓰는 것보단 더 나은 선택으로 봅니다.

갈등 없는 삶을 꿈꾸는 것은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겁니다. 갈등은 늘 우리 곁에 있고,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없애려고 애를 쓰며 세월을 보내기보다는 그 정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건강한 대처법을 찾는 것이 현명합니다. 인생에는 어차피 굴곡과 매듭이 있고, 매듭이 있어서 키가 크는 대나무처럼 삶을 이겨내야 마음의 힘도 성장합니다. 매듭 없는 인생을 꿈꾼다면 환상일 뿐입니다.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환상과 기대는 살아가는 일을 더 힘들고 지치게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인생은 이겨내는 겁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이 정점에 달했습니다. 앞으로 심해질 가능성도 큽니다. 사회적 갈등의 경우에 정신분석의 경험을 옮겨 풀어본다면 이러합니다. 우선, 갈등의 정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인간이 가진 진보와 보수의 성향은 어디에나 섞여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성격 안에도 어떤 면에서는 진보적이고 다른 면에서는 보수적인 성향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한쪽을 없애버리려고 덤빈다면 저항과 싸움만 일으킵니다. 정신분석이 한때 주장했던 갈등 제거 목표처럼 낡아서 버리는 방법입니다. 갈등의 원천인 양 측면을 서로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공존의 타협책을 찾아야 합니다. 정신분석의 자유연상처럼 역시 말은 쉬우나 실천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면하고 있는 갈등의 매듭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다면 우리 자신들과 우리가 모여 사는 사회가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신분석#갈등#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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