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부러워했던 안구 커플의 사랑은 이혼소송이라는 결말과 함께 막을 내렸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다시 고요해진 구혜선과 마주 앉았다.
SNS를 보니까 그동안 시골에서 지낸 것 같아요.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거든요. 거기 가서 지내다 왔어요.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실 것 같아요.
지금은 조금 덜하신데 처음 (이혼) 기사가 났을 땐 제가 죽을 줄 알았대요. 제가 평소 화를 내는 스타일이 아닌데, 공격성이 굉장히 높아졌거든요. 안 하던 행동들을 하니까 식구들이 다들 놀라고 걱정이 돼서 혜선이를 혼자 두면 안 된다고, 처음엔 언니가 일주일 동안 와 있었고 그다음엔 엄마도 와 계셨어요. 병원에도 한 달 정도 입원해 있었고요. 상담도 받고 그러면서 지금은 마음이 고요해졌어요.
결국은 시간이 약인 걸까요.
많은 게 후회스럽고 저 스스로도 제 행동이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누구를 미워하는 감정이 너무 크게 왔다 가니까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너무 믿었던 사람이라 용서가 안 됐고,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은 순간도 있었어요. 지금은 노력해서 고요해졌어요. 앞으로 내 삶을 다시 그려야 하기 때문에 잊으려고 노력했어요.
어머니가 안재현 씨와의 결혼을 반대했다고 들었어요.
엄마는 결혼하면 자기 인생을 살기 힘드니까, 저만큼은 자기 일을 하면서 여행도 다니고 자유롭게 살길 바라셨어요. 그 사람을 인사시키러 갔을 때도 “지금은 둘이 좋으니까 잘해주지만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 살면서 사랑이 식을 수도 있고 힘든 고비들이 많을 텐데 그런 걸 함께 잘 넘길 수 있는 사람인지 좀 더 시간을 갖고 겪어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졌고, 결국은 제 선택이었으니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재현 씨와 결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연애는 더 하고 싶지 않았어요. 모든 연애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 사람에게 “결혼하고 책임지는 사랑을 하고 싶다. 그게 아니면 헤어지자”고 했더니 결혼하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헤어질 결심으로 한 말인데, 포기를 안 하더라고요. 그렇게 달려오는 남자는 그 사람이 처음이었어요.
어디서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하세요.
안 좋은 날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싸울 일도 없었고 서로 싫어하는 일을 별로 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정말 싫어하는 게 그 사람이 술을 많이 마시는 거였는데, 다음 날 본인이 미안해하니까 그것도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남편도 저에게 싫은 부분이 있었겠죠. 예민한 사람인데 제 옷에 항상 반려동물 털이 묻어 있으니까 그런 부분은 힘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큰소리 낸 적도 없고 매일 웃고 손잡고 자고 하면서 평범하게 지냈어요. 남편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드라마 주인공으로 캐스팅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운동해야 한다고 아침에 일찍 집을 나가서 저녁 늦게 취해서 들어오곤 했어요. 저는 주인공을 맡아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가 보다 생각하고 칭찬을 많이 해줬어요. 한 달 넘게 몸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 새로 보였고, 성장하는 것 같아 너무 기뻤거든요. 6월에 그 사람이 오피스텔을 얻어서 나간 후 한 달 연락이 잘 안 됐을 때도 그저 혼자 집중해서 연습할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이혼하자고 하더라고요.
이혼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저는 의리와 측은지심, 서로 가엾게 여기며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을 다하는 게 참된 사랑이라 생각해요. 그 사람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 사람이 다리가 하나 없어도, 허리가 나가 누워 있어도 수발을 다 들었을 거예요. 결혼에는 그런 각오가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달랐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하고 나서 (방송) 일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일이 많아졌고, 누군가는 집안일을 해야 했거든요. 남편은 발전하는 사이 저는 퇴보했고, 그래서 버림받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처음 저희 둘이 만났을 땐 제가 선배였고, 그 사람이 저를 존중해줬거든요. 집안일이 얼마나 중요한데 깡그리 무시당하는 것 같고 내가 다리 한쪽이 없다고 버려지는 것 같았어요.
안재현 씨는 결혼생활이 불행해서 우울증 치료까지 받았다고 하던데요.
하루는 깔깔 웃으면서 재미있게 잘 놀다가 뜬금없이 자신은 살면서 행복한 날이 없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어릴 때를 생각해봐. 즐거웠던 일들이 많았을 거야. 나랑도 행복했던 시간이 많잖아”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좋은 것보다 늘 불행한 기억을 마음에 담는 사람이라 제가 그걸 고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연예인으로서 대중적인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SNS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알리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죠. 데뷔한 지 15년이 넘었는데 저를 향한 악플이나 조롱에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분노한 적이 없어요. 심각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어도 웃으며 넘겼죠. 그런데 이번에 그게 무너졌어요. 웬만한 일이면 웃으며 넘어가겠는데 이혼을 어떻게 유쾌하게 넘길 수 있겠어요. “그냥 헤어져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사귀던 남자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게 아니라 가족에게 버림받은 거예요. 그래서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 거고요. 저와 그 사람이 같은 소속사임에도 회사가 일방적으로 한 사람의 편에 섰기 때문에 저로선 제 입장을 알릴 다른 통로가 없기도 했고요.
모든 사람들이 혜선 씨에게 우호적인 건 아니에요.
네. 잘 알고 있어요. 오해하는 부분도 있고, 억울한 부분도 있지만 어쩔 수 없어요. 언젠가는 다 밝혀지겠죠. 그 사람도 억울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최근에 펴낸 책 ‘나는 너의 반려동물’을 보면서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구나, 란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원래 사랑을 안 믿었어요. 그냥 나 자신을 믿고 살아가다 보면 좋은 사람을 만나고 그런 사람과 서로 의지하며 살다 보면 죽기 전에 사랑이 있다는 생각이 들겠지, 이런 마음이었는데… 하마터면 사랑할 뻔했어요. 그 사람과 3년 동안 한 이불 덮고 살면서 매일 고맙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이런 감정 느끼며 함께 손잡고 두려움을 헤쳐나갔어요. 남편이 가장 고마웠던 순간은 마당에 죽어 있는 참새를 발견했을 때였어요. 제가 너무 무서워서 막 울고 있으니까 자기도 무서우면서 용감하게 그 새를 손수건에 싸서 묻어줬거든요. 그래서 사랑할 뻔했어요. 돌아보면 그 사람은 결혼이란 판타지를 너무 믿었던 거 같아요. 드라마에선 신부가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화장도 하고 예쁘게 있지만 결혼하면 누가 그렇게 살아요.
그 사람에겐 예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실제로 보석 디자인을 하는 예술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가난한 노인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거든요. 가난을 가난이라 생각하지 않고 소박하게 사는 게 좋아요. 화려한 게 덧없기도 하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지만 참 빠르잖아요.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스스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정신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사람에게도 양가 부모님이 노인이 되면 모두 한집에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벌어서 큰 집을 짓자,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외롭지 않으시도록.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그림을 봤어요. 예전보다 그림이 밝아진 것 같아요. 요즘에도 그림 작업을 하나요.
하루에 하나씩은 그리려고 노력해요. 제가 섬세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라 아주 등골이 빠져요(웃음).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그림은 ‘항해’라는 작품이에요. 작년에 팔라우에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간 적이 있어요. 밤에 깊은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데 그날따라 비가 어떻게나 많이 오던지. 스쿠버다이빙을 끝내고 오리발을 들고 나오는데 막 눈물이 나더라고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비도 오는 이 밤에 저 깊은 바다에 들어가 플랑크톤이 헤엄치는 걸 보고 나왔나. 이게 뭐라고’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림을 그리면서 그 바다에 있을 때를 떠올렸어요. ‘나는 덩그러니 홀로 남겨졌고, 이제부터 세상이라는 바다를 혼자 헤엄쳐서 가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그동안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같은 게 있었어요. 누구를 만나도 허전하고 남편이나 반려동물과 함께 있을 때도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고독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혼을 하면서 저도 많이 반성했어요. ‘매일 행복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왜 고독하다고 느꼈을까.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데’란 생각이 들어서요.
앞으로 이혼소송에는 어떻게 대응해나갈 생각인가요.
이혼은 해야죠. 그 사람은 다시는 저를 볼 일이 없을 거예요. 무엇보다 그 사람이 저와의 사생활을 회사와 의논한 부분은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배우 구혜선 씨의 모습은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제가 SNS에 ‘잠정적 은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소속사와 분쟁 중이라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거고, 연기는 너무 하고 싶어요. 예전엔 배우나 작가로 큰 꿈을 꾼 적도 있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게 되더라고요. 이젠 그러지 않으려고요. 작은 테이블에 종이 한 장과 붓 한 자루만 있으면 만족할 것 같아요. 그림 그리고 글 쓰고 꿈꾸고 자고 일어나 또 그리고…. 농익은 배우가 돼 있으면 더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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