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지나간 후 구혜선

  • 여성동아
  • 입력 2019년 11월 28일 18시 07분


모두가 부러워했던 안구 커플의 사랑은 이혼소송이라는 결말과 함께 막을 내렸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다시 고요해진 구혜선과 마주 앉았다.
톱, 부츠 모두 에이치앤엠. 스커트 오떼뜨. 허리에 묶은 재킷 코스.
톱, 부츠 모두 에이치앤엠. 스커트 오떼뜨. 허리에 묶은 재킷 코스.
원피스 리플레인. 허리에 묶은 니트 솔로이스트.
원피스 리플레인. 허리에 묶은 니트 솔로이스트.

SNS를 보니까 그동안 시골에서 지낸 것 같아요.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거든요. 거기 가서 지내다 왔어요.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실 것 같아요.

지금은 조금 덜하신데 처음 (이혼) 기사가 났을 땐 제가 죽을 줄 알았대요. 제가 평소 화를 내는 스타일이 아닌데, 공격성이 굉장히 높아졌거든요. 안 하던 행동들을 하니까 식구들이 다들 놀라고 걱정이 돼서 혜선이를 혼자 두면 안 된다고, 처음엔 언니가 일주일 동안 와 있었고 그다음엔 엄마도 와 계셨어요. 병원에도 한 달 정도 입원해 있었고요. 상담도 받고 그러면서 지금은 마음이 고요해졌어요.

결국은 시간이 약인 걸까요.

많은 게 후회스럽고 저 스스로도 제 행동이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누구를 미워하는 감정이 너무 크게 왔다 가니까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너무 믿었던 사람이라 용서가 안 됐고,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은 순간도 있었어요. 지금은 노력해서 고요해졌어요. 앞으로 내 삶을 다시 그려야 하기 때문에 잊으려고 노력했어요.
블라우스 유라고. 재킷 오떼뜨.
블라우스 유라고. 재킷 오떼뜨.

어머니가 안재현 씨와의 결혼을 반대했다고 들었어요.

엄마는 결혼하면 자기 인생을 살기 힘드니까, 저만큼은 자기 일을 하면서 여행도 다니고 자유롭게 살길 바라셨어요. 그 사람을 인사시키러 갔을 때도 “지금은 둘이 좋으니까 잘해주지만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 살면서 사랑이 식을 수도 있고 힘든 고비들이 많을 텐데 그런 걸 함께 잘 넘길 수 있는 사람인지 좀 더 시간을 갖고 겪어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졌고, 결국은 제 선택이었으니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재현 씨와 결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연애는 더 하고 싶지 않았어요. 모든 연애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 사람에게 “결혼하고 책임지는 사랑을 하고 싶다. 그게 아니면 헤어지자”고 했더니 결혼하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헤어질 결심으로 한 말인데, 포기를 안 하더라고요. 그렇게 달려오는 남자는 그 사람이 처음이었어요.

어디서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하세요.

안 좋은 날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싸울 일도 없었고 서로 싫어하는 일을 별로 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정말 싫어하는 게 그 사람이 술을 많이 마시는 거였는데, 다음 날 본인이 미안해하니까 그것도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남편도 저에게 싫은 부분이 있었겠죠. 예민한 사람인데 제 옷에 항상 반려동물 털이 묻어 있으니까 그런 부분은 힘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큰소리 낸 적도 없고 매일 웃고 손잡고 자고 하면서 평범하게 지냈어요. 남편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드라마 주인공으로 캐스팅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운동해야 한다고 아침에 일찍 집을 나가서 저녁 늦게 취해서 들어오곤 했어요. 저는 주인공을 맡아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가 보다 생각하고 칭찬을 많이 해줬어요. 한 달 넘게 몸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 새로 보였고, 성장하는 것 같아 너무 기뻤거든요. 6월에 그 사람이 오피스텔을 얻어서 나간 후 한 달 연락이 잘 안 됐을 때도 그저 혼자 집중해서 연습할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이혼하자고 하더라고요.
블라우스 코스.
블라우스 코스.
블라우스와 니트 베스트 모두 모이아. 스커트 그레이양.
블라우스와 니트 베스트 모두 모이아. 스커트 그레이양.

이혼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저는 의리와 측은지심, 서로 가엾게 여기며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을 다하는 게 참된 사랑이라 생각해요. 그 사람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 사람이 다리가 하나 없어도, 허리가 나가 누워 있어도 수발을 다 들었을 거예요. 결혼에는 그런 각오가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달랐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하고 나서 (방송) 일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일이 많아졌고, 누군가는 집안일을 해야 했거든요. 남편은 발전하는 사이 저는 퇴보했고, 그래서 버림받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처음 저희 둘이 만났을 땐 제가 선배였고, 그 사람이 저를 존중해줬거든요. 집안일이 얼마나 중요한데 깡그리 무시당하는 것 같고 내가 다리 한쪽이 없다고 버려지는 것 같았어요.

안재현 씨는 결혼생활이 불행해서 우울증 치료까지 받았다고 하던데요.

하루는 깔깔 웃으면서 재미있게 잘 놀다가 뜬금없이 자신은 살면서 행복한 날이 없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어릴 때를 생각해봐. 즐거웠던 일들이 많았을 거야. 나랑도 행복했던 시간이 많잖아”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좋은 것보다 늘 불행한 기억을 마음에 담는 사람이라 제가 그걸 고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연예인으로서 대중적인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SNS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알리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죠. 데뷔한 지 15년이 넘었는데 저를 향한 악플이나 조롱에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분노한 적이 없어요. 심각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어도 웃으며 넘겼죠. 그런데 이번에 그게 무너졌어요. 웬만한 일이면 웃으며 넘어가겠는데 이혼을 어떻게 유쾌하게 넘길 수 있겠어요. “그냥 헤어져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사귀던 남자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게 아니라 가족에게 버림받은 거예요. 그래서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 거고요. 저와 그 사람이 같은 소속사임에도 회사가 일방적으로 한 사람의 편에 섰기 때문에 저로선 제 입장을 알릴 다른 통로가 없기도 했고요.

모든 사람들이 혜선 씨에게 우호적인 건 아니에요.

네. 잘 알고 있어요. 오해하는 부분도 있고, 억울한 부분도 있지만 어쩔 수 없어요. 언젠가는 다 밝혀지겠죠. 그 사람도 억울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구혜선은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은 책 ‘나는 너의 반려동물’을 펴냈다.
구혜선은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은 책 ‘나는 너의 반려동물’을 펴냈다.

최근에 펴낸 책 ‘나는 너의 반려동물’을 보면서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구나, 란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원래 사랑을 안 믿었어요. 그냥 나 자신을 믿고 살아가다 보면 좋은 사람을 만나고 그런 사람과 서로 의지하며 살다 보면 죽기 전에 사랑이 있다는 생각이 들겠지, 이런 마음이었는데… 하마터면 사랑할 뻔했어요. 그 사람과 3년 동안 한 이불 덮고 살면서 매일 고맙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이런 감정 느끼며 함께 손잡고 두려움을 헤쳐나갔어요. 남편이 가장 고마웠던 순간은 마당에 죽어 있는 참새를 발견했을 때였어요. 제가 너무 무서워서 막 울고 있으니까 자기도 무서우면서 용감하게 그 새를 손수건에 싸서 묻어줬거든요. 그래서 사랑할 뻔했어요. 돌아보면 그 사람은 결혼이란 판타지를 너무 믿었던 거 같아요. 드라마에선 신부가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화장도 하고 예쁘게 있지만 결혼하면 누가 그렇게 살아요.

그 사람에겐 예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실제로 보석 디자인을 하는 예술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가난한 노인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거든요. 가난을 가난이라 생각하지 않고 소박하게 사는 게 좋아요. 화려한 게 덧없기도 하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지만 참 빠르잖아요.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스스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정신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사람에게도 양가 부모님이 노인이 되면 모두 한집에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벌어서 큰 집을 짓자,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외롭지 않으시도록.
니트 톱 나이스크랍. 재킷과 스커트 모두 코스. 부츠 자라.
니트 톱 나이스크랍. 재킷과 스커트 모두 코스. 부츠 자라.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그림을 봤어요. 예전보다 그림이 밝아진 것 같아요. 요즘에도 그림 작업을 하나요.

하루에 하나씩은 그리려고 노력해요. 제가 섬세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라 아주 등골이 빠져요(웃음).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그림은 ‘항해’라는 작품이에요. 작년에 팔라우에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간 적이 있어요. 밤에 깊은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데 그날따라 비가 어떻게나 많이 오던지. 스쿠버다이빙을 끝내고 오리발을 들고 나오는데 막 눈물이 나더라고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비도 오는 이 밤에 저 깊은 바다에 들어가 플랑크톤이 헤엄치는 걸 보고 나왔나. 이게 뭐라고’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림을 그리면서 그 바다에 있을 때를 떠올렸어요. ‘나는 덩그러니 홀로 남겨졌고, 이제부터 세상이라는 바다를 혼자 헤엄쳐서 가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그동안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같은 게 있었어요. 누구를 만나도 허전하고 남편이나 반려동물과 함께 있을 때도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고독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혼을 하면서 저도 많이 반성했어요. ‘매일 행복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왜 고독하다고 느꼈을까.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데’란 생각이 들어서요.

앞으로 이혼소송에는 어떻게 대응해나갈 생각인가요.

이혼은 해야죠. 그 사람은 다시는 저를 볼 일이 없을 거예요. 무엇보다 그 사람이 저와의 사생활을 회사와 의논한 부분은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배우 구혜선 씨의 모습은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제가 SNS에 ‘잠정적 은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소속사와 분쟁 중이라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거고, 연기는 너무 하고 싶어요. 예전엔 배우나 작가로 큰 꿈을 꾼 적도 있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게 되더라고요. 이젠 그러지 않으려고요. 작은 테이블에 종이 한 장과 붓 한 자루만 있으면 만족할 것 같아요. 그림 그리고 글 쓰고 꿈꾸고 자고 일어나 또 그리고…. 농익은 배우가 돼 있으면 더 좋겠고요.

사진 신유나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꼼지락
제품협찬 그레이양 나이스크랍 리플레인 모이아 솔로이스트 에이치앤엠 오떼뜨 유라고 자라 코스 헤어 장하준 메이크업 강석균 스타일리스트 박선용

EDITOR_FASHION 정세영 기자 EDITOR_FEATURE 김명희 기자

[이 기사는 여성동아 67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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