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투자 활성화 내세우면서… 핵심적 규제개혁은 반영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0일 03시 00분


[내년 경제정책 운용 방향]100조 투자대책 실효성 의문
기재부 “한국경제 궤도이탈 절박함”… ‘경기 반등-성장잠재력 제고’ 목표
민간투자 40조중 25조 투자처 모호… 노동-입지-환경 등 규제 손도 안대
전문가 “기업 투자 실현될지 불투명… 부작용 있는 정책 수정해야 효과”

정부는 19일 내놓은 2020년 경제정책 방향의 첫 번째 과제로 ‘경제상황 돌파’를 내걸었다. 이는 미중 무역갈등이 다소 완화됐지만 중국 경기 둔화 우려와 국내 건설투자 급감 등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투자 100조 원 △주력 산업 경쟁력 확보 △유턴기업 유치 등 민간 투자 활성화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다만 기업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핵심 규제를 건드리지 못해 투자-소비-수출 확대를 통한 성장률 제고라는 목표가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100조 원 투자대책 ‘공염불’ 우려

정부 내년 경제정책의 목표를 ‘경기 반등 및 성장 잠재력 제고’로 잡았다. 성장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내년 경제정책 방향에는 한국 경제가 궤도를 이탈해 있다는 절박감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간판급 정책이 민간, 민자, 공공 3대 분야에서 100조 원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울산석유화학공장(7조 원), 인천복합쇼핑몰(1조3000억 원) 등 기업 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애로를 선제적으로 해결해주고 사업 운영 측면에서 지원해 자금이 원활하게 집행되게 하려는 취지다.

아울러 사업 적격성 심사를 통과한 15조 원 규모의 민자사업 가운데 5조2000억 원 규모를 내년에 집행하고 10조 원 규모의 신규 민자사업을 추가로 발굴할 계획이다. 노후 하수처리장 현대화, 항만 재개발 등이 관련 사업이다. 공공기관 투자는 2019년 대비 5조 원 많은 60조 원으로 늘린다.

해외에 나가 있는 기업을 국내로 되돌아오게 하는 ‘유턴기업 22개 유치’ 사업과 중소·중견기업에 시설 투자를 촉진하는 4조5000억 원 규모의 금융지원 프로그램, 투자세액공제율 확대 등도 투자를 늘리려는 정책이다.

다만 이런 민간 투자 유도 규모 중 상당수가 어디서 어떻게 추진되는 것인지 불확실한 상태다. 예를 들어 민간기업 투자액 25조 원 중 15조 원, 민자투자액 15조 원 중 10조 원 등 총 25조 원의 투자처가 모호하다.

정부가 지원 대상으로 꼽은 10조 원대의 민간 투자 프로젝트의 경우 집행이 제대로 이뤄질지 역시 미지수다. 실제로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2019년 경제정책 방향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는 총 13조8000억 원의 투자 유도 계획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 중 현재 착공에 들어간 건 2조8000억 원(20.2%)에 불과하다. 유턴기업 유치는 어떤 기업을 어떻게 복귀시켜 어떻게 키우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빠져 있다.

○ 노동·입지·환경규제 손도 못 댔다


내년 경제정책 방향에는 기업들이 요구해온 노동, 입지, 환경 관련 규제완화책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올 9월 화학물질 규제 완화, 규제비용 총량제 법제화, 법인세 및 상속세 완화, 대기업집단 규제 폐지 등을 정책과제로 제안했지만 검토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실제 기업의 애로를 풀어주면서 투자를 유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노동유연성 확보, 파격적인 규제혁파, 감세 등 민간이 요구해온 시장 활력을 위한 개혁과제는 시늉만 냈고, 향후 본격적인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재부 등 경제정책 당국이 핵심 규제를 건드리지 못하는 건 권력의 무게중심이 이미 국회로 넘어간 데다 정부의 이해관계자 간 갈등 조정 능력이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부처가 추진하는 노동혁신 방안은 고용안정성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공공기관 혁신은 재정지원에 치중하는 등 구조조정과는 거리가 먼 상태다.

정부의 내년 성장 전망치 2.4%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해외 투자은행(IB) 등의 전망치보다 0.1∼0.6%포인트 높다. 정부는 미중이 1차 무역합의를 이룬 점을 반영했다지만 객관적 수치로 입증하기 힘든 이슈로 성장 목표를 무리하게 올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투자 인센티브를 내놨지만 경직적인 근로조건 등 기업 활력을 억누르는 정부의 힘이 더 큰 상황에서 실제 기업 투자가 이뤄질지 의문”이라며 “부작용이 있는 정책을 수정해 투자 의욕을 살려야 한다”고 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제조업 분야 구조조정 지원 및 노동, 시설 분야에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송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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