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대출규제 실수요자 발목 잡고 부동산 정책 난맥상에 시장 혼란
정부, 매매 허가제 논란 수습 진땀… 노영민 “강기정에 ‘사고쳤네’ 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전용 84m² 아파트를 12억5000만 원에 사려던 40대 A 씨는 12·16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이후 결국 계약을 포기했다. 대출 가능액이 5억 원에서 4억3000만 원으로 줄면서 7000만 원을 융통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각종 대출을 다 끌어모아 빠듯하게 자금을 맞춰 놓은 탓에 방법이 없었다. A 씨는 “그동안 허리띠를 졸라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었는데…. 대책 발표 이전에 계약하지 못한 게 한스럽다”고 하소연했다.
파급효과가 큰 부동산 정책이 예고 기간 없이 자주 나오고 정부 내 조율도 없이 불쑥 던져지는 행태가 반복되면서 국민의 혼란과 피해가 커지고 있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대책을 발표했다가 ‘땜질’을 거듭하고 안 그래도 복잡한 부동산 관련 세제는 현 정부 들어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달라져 세무사조차 헷갈릴 만큼 ‘난수표’가 됐다. 세금 신고를 잘못해서 가산세를 무는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대통령의 14일 신년 기자회견 이후 불거진 강기정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부동산 매매 허가제 관련 언급 또한 이런 난맥상에서 나왔다는 시각이 많다. 급기야 부동산 정책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박선호 1차관은 주택거래 허가제에 대해 16일 “검토한 적 없다”고 라디오 방송에서 두 번이나 명확하게 밝혔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도 이날 “(매매 허가제가) 사적인 간담회에서조차 검토된 적 없다”며 “강 수석을 만나서는 ‘어이 사고 쳤네’라고 얘기해 줬다”고 밝혔다. 위헌적 발상이라는 여론에 밀려 수습하는 모양새다.
12·16대책 발표 직후 정부는 준비 부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대책 발표 당일에는 15억 원 초과 아파트라 하더라도 임차보증금(전세금) 반환용 주택담보대출은 허용한다고 밝혔다가 하루 만인 지난해 12월 17일 이를 금지한다고 말을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도입 때도 부동산 정책을 놓고 정부 내 의견 충돌이 돌출됐다. 국토부에서 8월 구체적인 추진 방침을 밝힌 직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실제 적용에는 부처 간 조율이 필요하다”며 제동을 거는 모습을 보였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보이는 이런 난맥상은 ‘집값 안정’이라는 정책 효과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은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리면 어떤 얘기를 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지금 상황은 신뢰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새샘 iamsam@donga.com·장윤정·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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