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56·사진)에게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선고가 내려진 3차례 1심 재판에서 전현직 법관 5명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 개입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가 내려지기는 임 부장판사가 처음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을 포함해 모두 14명이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송인권)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14년 2월부터 2년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을 지낸 임 부장판사는 이 기간 서울중앙지법에 공소 제기된 3건의 재판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3건의 재판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칼럼을 쓴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사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체포치상 사건 △프로야구 선수의 불법 도박 사건이다.
임 부장판사는 가토 전 지국장 사건 재판장에게 선고 전 중간 판단 성격으로 해당 칼럼이 허위라는 것이 입증됐다는 점을 밝히게 하고, 민변 변호사 체포치상 사건 재판장에게는 판결문에 쓴 양형 이유의 표현 수정을 요청한 혐의를 받았다. 약식명령이 청구된 프로야구 선수 불법 도박 사건이 정식 재판에 회부되는 것을 막은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에 대해 “지위나 개인적 친분 관계를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밝히면서도 직권남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형법상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공무원이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위법·부당하게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데, 재판 관여 행위 자체가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일반적인 직무권한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권이 없으면 직권남용도 없다’는 법리를 적용한 것이다. 이런 판단에 따라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가 징계 사유에 해당할 수는 있지만 위헌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직권남용죄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임 부장판사가 각 사건 재판장에게 부당한 요청을 한 것은 맞지만 합의부 사건은 재판장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2명의 배석판사와) 합의를 거쳐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과 각 재판부의 결정 사이엔 인과관계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가 ‘사전이든 사후든 재판에 대한 간섭은 일절 허용될 수 없고 이를 어긴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는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밝히면서도 무죄를 선고한 것을 두고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검찰은 “재판 개입을 위한 직무권한이 존재할 수 없고 이로 인해 직권남용죄도 성립할 수 없다면 인사권자나 상급자의 어떤 재판 관여도 처벌할 수 없게 된다”며 “재판 개입이 충분히 입증됐는데 무죄를 선고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은 항소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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