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전산시스템 개편 지연에 일부 먹통…“재판 진행 차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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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전산시스템 개편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며 시스템이 중단돼 전국 법원에서 재판 차질이 빚어졌다. 약 3000억 원을 들여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재판 업무 디지털화를 시도해 온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국민들에게 큰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옮겨야 할 데이터가 과거에 비해 대폭 늘어났음에도 하루 만에 개편작업을 진행하는 등 안이한 준비로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 “민사 재판 불가능”
당초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은 부산·수원회생법원 개원에 따른 데이터 이관작업을 지난달 28일 업무시간 후 시작해 2일 새벽 4시까지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 오류가 발생하면서 작업이 지연됐고, 결국 업무가 시작하는 오전 9시까지도 시스템이 복구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민·형사 재판 관련 전산처리 일체를 담당하는 재판사무시스템 △판사들이 기록을 열람하고 결정문을 입력하는 법관통합재판지원시스템 △재판 당사자 등이 재판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일정을 확인하는 전자소송시스템 등이 전면 중단됐다. 전국 법원 홈페이지에서 사건 검색도 불가능했다.

특히 서면 중심으로 진행되는 형사소송과 달리 대부분의 절차가 전자 시스템으로 이뤄지는 민사소송에서 차질이 컸다. 민사소송의 경우 법정에서 업로드 된 조서, 증거 등을 띄워놓고 진행하는데 이런 자료를 불러오는 법관통합재판지원시스템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에선 이날 민사재판을 진행하려던 11개 재판부 중 3개의 재판부가 재판 기일을 급히 변경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민사 사건은 대부분 전자소송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재판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한 변호사는 “당장 내일이 변론기일인데 아직 증거 등 서류를 못내서 큰일” 이라며 “분량상 직접 방문해 내기도 어려워 재판장에게 양해를 구해야하는 상황” 이라고 했다. 이날 열린 민사 재판에선 전자서류가 확인되지 않아 요지를 구두로 요약하거나, 종이로 된 서류를 보며 펜으로 다음 기일을 잡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법원행정처는 이날 오전만 해도 전자소송 홈페이지 등에 ‘낮 12시까지 시스템 작업을 완료하겠다’는 공지를 올렸을 뿐 별다른 안내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오후 2시 10분 경에야 김상환 처장 명의로 “오늘(2일) 중 재판사무 및 전자소송시스템의 정상적 사용이 어렵게 됐다”며 사과했다.
● 하루만에 진행된 전산작업…  “예고된 혼란”
시스템 중단을 두고 법원행정처는 “방대한 법원 데이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새로 개원하는 부산·수원회생법원으로 약 7억7000만 건의 데이터를 옮겨야 하는데 오류가 발생하면서 작업이 지체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방대한 데이터 양을 고려하지 않고 안이하게 개편작업에 나서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석좌교수는 “데이터 이관 작업에는 충분한 시간과 인력이 필요한데 쉽게 생각한 것 같다”며 “데이터 이관이라는 단순 작업으로 서버에 문제가 생긴 걸 보면 랜섬웨어나 해킹 등에도 취약할 수 있는 만큼  전반적인 시스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이 주말 이틀이 아니라 3·1절 하루만에 개편을 시도한  두고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법원 개원일이 2일이라 최대한 임박해서 누락분 없이 넘기다 보니 부득이한 측면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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