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종로 뒷골목 영진사로 출발
2대에 걸친 K주얼리의 살아 있는 역사
고객의 스토리와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
100% 사전 주문, 핸드 메이드로 제작
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는 쌈짓돈을 모아 안방에 기계를 들이고, 반지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가난을 대물림하기 싫어서였다. 성실함과 꼼꼼함을 인정받은 어머니. 늘어나는 일만큼 차곡차곡 돈도 모여 갔다.
1974년 딸이 태어나자 그는 종로구 예지동의 후미진 뒷골목에 ‘영진사’라는 작은 반지 공장을 차렸다. 영진은 딸의 이름이었다. 직원이 근 서른 명까지 늘어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직접 소비자를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공장 안에 매장을 내고 유통에 뛰어들었다. 매장의 상호 역시 영진사였다.
영진사는 내로라하는 보석상들이 모인 종로에서 “반지 하나는 똑 부러지게 만든다”는 입소문을 탔다. 영진사만의 디자인으로 구성된 첫 카탈로그를 선보였다. 이 카탈로그는 지방 소도시까지 온 동네 금은방에 비치됐다. 도매 사업까지 진출하게 된 영진사는 1995년 상호를 한양체인으로 바꾸고 새로운 도약을 맞이했다.
2001년 어머니를 꼭 빼닮은 딸이 뒤를 이었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면서 K주얼리의 역사를 쓰고 있는 오르시아의 한영진 대표 얘기다. 한 대표는 탄생과 동시에 운명처럼 주얼리와 연을 맺었다.
“꼬마 때부터 공장에서 놀며 직원들과 어울리는 게 일상이었죠. 세공을 하느라 어머니의 손은 항상 새까맸어요. 저도 반지에 광을 내는 작업을 할 때가 마음이 가장 편합니다.”
한 대표가 가업을 승계한 당시 주얼리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했지만 가격 출혈 경쟁이 심해지던 시기였다. 수입 명품 브랜드도 밀려왔다. 20대의 한 대표는 어머니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영업용 카탈로그 말고 우리만의 책자를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한 대표는 주얼리가 가진 내면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정답이라고 믿었다. 참고할 서적, 자료가 거의 없던 때였기에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한국 주얼리 시장에 판매를 위한 세일즈북이 아니라, 스타일을 제시하는 최초의 디자인북은 그렇게 탄생했다.
‘순금 디자인북’이 히트를 친 데 이어 2005년에는 ‘한스 주얼리’라는 웨딩밴드 전문 브랜드를 론칭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한 대표는 일본으로 건너가 J.C.Bar와 제휴를 맺고 그들의 운영 노하우를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J.C.Bar의 프로세스는 온통 고객에게 초점이 맞춰집니다. 신랑, 신부에게 원하는 반지의 디자인을 묻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습니다. 첫 키스는 언제 어디서 했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함께 꿈꾸는 소망은 무엇인지 등을 듣습니다. 그런 후에 고객의 스토리와 추억이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반지를 스케치합니다. 약 3개월에 걸친 논의와 보완을 거쳐 반지의 실루엣이 완성되는 거죠. 그야말로 리얼 오더 메이드입니다.”
이는 어머니의 지론과도 정확하게 일치했다. 어머니는 평소 “반지는 제품을 착용하는 사람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한 대표는 2011년 오르시아로 상호를 바꾸고, 강남 시대를 열면서 본격적으로 오더 메이드 사업을 전개한다. 상호에 이미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제시돼 있다. 오르시아(ORSIA)는 독창성(Originality), 사랑(Romance), 다양성(Spectacle), 주체성(Identity), 감동(Attraction)의 머리글자를 따서 한 대표가 직접 작명했다. 이탈리아어로 ‘금빛 요정’이란 뜻의 합성어도 된다.
하지만 한일 양국의 문화 차이 때문이었을까. 처음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당시만 해도 2~3개월을 여유 있게 기다려주는 고객은 거의 없었다. 대량으로 물건을 찍어내 진열해놓고 판매해도 되는데 오르시아는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는 걸까.
“예전엔 전국에 지점을 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반지는 사람이 두드려서 만들어야 손맛이 나요. 세상에 하나뿐인, 진심이 담긴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영진의 반지’라고 하면 믿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이런 마음이 세상에 전해진다면 대중화의 길도 자연스럽게 열리겠죠.”
오르시아는 다른 업체들과는 달리 디자인연구소와 공방이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청담동 쇼룸 안에 같이 위치해 있다. 30년 이상 경력의 장인들이 오르시아만의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정성스럽게 제작하는 과정을 고객들에게 투명하게 보여준다. 고객들이 제작에 동참할 수도 있다.
“티파니, 까르띠에, 부쉐론 등 명품 브랜드에 비해 기술력은 결코 뒤지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가 앞선다고 자부합니다. 가격은 비교도 안 되게 싸죠. 다만 우리 브랜드를 어떻게 잘 포장하고 널리 알려서 세계화할 수 있을지가 50주년을 맞은 요즘 숙제이죠.”
아들 셋을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한 한 대표는 “2017년 세공 장인인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최고의 스승이셨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오르시아는 동종 업계에서 네이버가 보증하는 영수증 리뷰와 구글 리뷰 최다 업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운영 스타일에 맞게 홈페이지(orsia.co.kr)는 읽을거리로 가득하다. 이 기사의 많은 부분은 홈페이지를 인용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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