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 “트럼프, 권력 잃게 될 가능성 높은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0일 00시 01분


코멘트
8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시내에 위치한 파리 경제대 강의실에서 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대 교수(49)가 양극화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8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시내에 위치한 파리 경제대 강의실에서 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대 교수(49)가 양극화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세계 위기와 불평등 심화 문제는 유권자와 시민들, 즉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2013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21세기 자본’을 통해 빈부격차와 불평등 문제에 관한 세계적 관심을 이끌어낸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대 교수(49)가 8일(현지 시간) 후속작 ‘자본과 이데올로기(Capital and Ideology)’ 한국어판(문학동네) 출판 기자회견을 갖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방향성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이 책에서 부(富)의 사적 대물림을 막는 ‘사회적 일시 소유’란 개념을 제시했다.

피케티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균등한 소득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점화된 배경도 사회 불평등 심화와 이데올로기 문제 차원에서 접근했다. 그는 전 지구적으로 강화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을 넘어선 ‘기본자산’ 제도가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누진과세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부의 축적은 한 사람의 능력에 따른 결과를 넘어선, 사회적 발명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파리 경제대 강의실에서 이뤄진 일문일답.




―코로나19 사태로 전 지구가 위기상황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전망하나? 이를 극복할 방안도 듣고 싶다.

“난 경제학자일 뿐 예언가는 아니다.(웃음) 역사적으로 보면,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위기는 경제 문제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변화시켜왔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 내 (인종차별 반대)시위들은 한편으로는 코로나19가 촉발한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유권자, 시민들이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그는 코로나19 위기로 공공의료 강화나 기본소득, 최저임금과 같은 복지체계 신설 등 사회적 평등이 더욱 강화되거나, 정반대로 외국인에 대한 경계, 자국중심주의와 극단적 민족주의, 양극화 심화 등 사회적 퇴행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어떤 측면이 더 강하게 드러날까? 개인적으로는 미래를 낙관하는 편이다.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절망감 속에서 혐오나 광기에 미래를 맡기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권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지나치게 선동적이고 비합리적인 인물을 지금과 같이 불안정한 시기에 계속 지도자로 삼는다는 것은 사람들을 더 큰 불안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재앙이나 위기는 정해진 한 가지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결국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나갈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모든 시민이 이데올로기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됐다. 그 연장선에서 기본소득 문제가 집중 거론되고 있다.

“나는 ‘기본소득’이라는 단어보다는 ‘최저소득’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기본소득은 마치 모든 복지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지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기본소득으로 주는 금액은 기초생활비 정도다. 이런 제도는 이미 많은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 프랑스에도 저소득층을 위한 월 564유로(약 76만 원)의 활동연대 소득제도가 있다 이것만으론 불평등을 시정하기 어렵다.”

그는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청년들에게 프랑스 성인의 평균 자산의 60%에 해당하는 12만 유로(약 1억 6000만 원)를 기본자산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사적소유, 즉 자본은 나눠 가져야 한다. 20세기를 거치며 소득, 급여의 불평등은 많이 감소했다. 그러나 자산 집중은 여전히 심하다. 프랑스의 경우 상위 10%가 거의 60%에 가까운 자산을 소유한다. 최상위 1%가 25%를 가진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가들이 말하는 대로, 시장이 활성화돼 상위 계층의 부가 아래 계층으로 흘러내려오길 기다려야 하나? 성장을 통한 부의 재분배는 역사적으로도 잘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30년 전에는 하위 50% 계층의 자산 규모가 전체의 3~4%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1~2% 수준에 그친다. ‘기본자산’을 제공해야 하는 이유다. 만 25세가 되면 주거를 마련하거나, 창업을 구상할 수 있는 종잣돈을 사회가 함께 마련해주는 개념이다. 이런 식으로 자산을 분배하지 않으면 부가 분산될 가능성이 없다.”

―기본소득 등 복지 확대는 도덕적 해이와 근로의욕 저하 등의 사회문제를 동반한다. 국가의 재정부담도 커진다. 2017년 세계 최초로 시행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를 듣는 이유다. 적절한 경쟁과 노력을 통한 정당한 성취와 부의 획득이 사라지면 사회 자체의 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도 세 딸이 있다.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능력과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능력에 대해 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가난한 집안 출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보다 나은 가정환경의 아이들과는 (능력을 획득하는데) 다를 수 있다. 현시대는 ‘능력’이란 개념이 지나치게 과장됐다. 경제적 상황에 따라 기회는 다르게 주어진다. (억만장자가 된) 빌 게이츠가 혼자 PC를 만들 수 있었을까?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인류와 사회가 축적한 지식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능력과 소득, 사적소유, 부도 결국 ‘사회의 발명품’이다. 문제는 개인의 능력과 소유를 지나치게 신성시한다는 점이다. 능력은 개인의 성공을 결정짓는 수많은 과정 중 그저 하나일 뿐이다.”




피케티 교수는 자신이 개인의 부와 사적 소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이 축적한 자산은 합리적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만 유의미하다고 본다”며 “적절한 조세정책이나 법을 통해서 한 개인이 축적하는 자산을 합리적 수준으로 조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 방안을 이야기해달라.


“소득과 자산에 대한 높은 누진과세가 필요하다. 한국을 포함해 모든 나라는 누진소득세 뿐 아니라 누진소유세도 제정해야 한다. 누진소득세만 제정하는 건 잘못이다. 예를 들어 백만장자들도 세금이나 사업상 이유로 소득이 매우 낮은 경우가 있다. 미국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내 비서보다 내가 더 낮은 소득세를 낸다’고 말한다. 소득은 매우 낮은데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 반대도 있다. 과세를 통해 얻은 재정은 공공보건, 공공교육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실현 가능한 정책인가? 당신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시민들의 ‘참여’를 강조했다. 그러나 프랑스 노란조끼 운동의 경우 사회 양극화를 비판하는 많은 시민이 참여했다. 그러나 구체적 목표점이 뚜렷하지 않았고, 동력도 잃었다.

“역사적으로, 불평등을 크게 시정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운동, 둘째 정당, 노동단체 등 조직된 집단의 구체적 프로그램, 셋째 이들을 하나로 묶는 이데올로기였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심화되는 불평등을 막기 위해 가장 부족한 점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환시키는’ 부분이다. 1990년대 공산주의사회 몰락 이후, 사람들은 감히 이데올로기 문제를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불평등 감소를 위한 이데올로기의 전환을 시도해볼 때다.”

이어 그는 “역사적으로 불평등이 빠른 시간 내 시정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앞선 저서(‘21세기 자본’)에서는 불평등이 이데올로기와 맺고 있는 관계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사회라도 불평등과 경제문제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접근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 대부분 사회의 지배계층은 ‘지금과 다른 방식의 사회구조는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또 ‘불평등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포스트 식민사회, 라틴아메리카 독립혁명, 인도의 변화 등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불평등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시정됐다.”

―당신은 새 저서를 통해 ‘지식인 좌파’와 ‘부자 우파’가 담합해 번갈아 집권하는 정치 구조를 비판했다. 서민들을 대표한다고 강조해온 정치세력들이 자본과 결탁되거나 지식인 계층인 중상층 이상 만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저소득, 저학력층은 소외되고 불평등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서민계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왔던 미국의 민주당, 유럽의 다양한 형태의 좌파 정당 혹은 사민당들이 점점 신뢰를 잃고 있다. 고학력 유권자들의 정당으로 변모한 탓이다. 또 우파 정당이나 중도우파 정당들은 자산과 소득 상위 사람들, 즉 상인 우파들이 모여 있는 정당이다. 곳곳에서 교육 엘리트와 자산의 엘리트 간에 공생이 이뤄지면서, 2차대전 이후 ‘부의 재분배’라는 목표 추구와 서민층의 입장 대변은 사라졌다. 이제는 서민계층에 이해를 충족시키는 대안적 국제주의 형태를 찾아내야 할 때다.”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교육 기회의 평등 △노동자들의 의결권 강화 △임금 체계 조정을 통한 노동자 권리 강화 등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