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조 바이든 당시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은 중국 베이징 동쪽에 있는 허베이성의 여름 휴양지 베이다이허(北戴河)를 방문했다. 그해 겨울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켜 두 나라 간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나선 것이었다.
바이든 위원장은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에게 “미국은 번영과 통합의 중국이 글로벌 무대에 오르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빌 클린턴 정부 후반기였던 2000년 즈음만 해도 미국은 중국에 손을 내밀어 국제무대에 끌어들이면 자국과 글로벌 경제 모두에 이로운 결과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중국이 공정한 무역을 통해 미국 상품을 더 많이 사들일 것이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런 미국의 대(對)중국 관여(engagement) 정책의 중심에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된 그에게는 약 20년 전 중국에 보였던 유화적인 태도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올해 초 열린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 토론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민주주의의 뼈가 없는 깡패”라고 칭했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올라오면 자연히 기존의 전체주의를 버리고 국제질서에 순응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덩치만 커진 채 자유세계를 위협하고 있다며 극도의 실망감을 드러낸 것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전방위적인 갈등 양상을 보이면서 미중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대중 압박을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전략으로 치부해버리거나 트럼프 행정부가 일부 강경파에 이끌린 결과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최근 야당인 민주당의 태도나 미국의 전체적인 여론 흐름 등을 놓고 보면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분석이 더 우세한 상황이다. ‘11월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이기든 간에 지금의 미중 갈등 양상이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잦아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 ‘중국 때리기’에는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美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 기조는 특히 7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캘리포니아주 요바린다 닉슨도서관 연설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지금까지의 중국 관여 정책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괴물,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다는 인식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시진핑 주석은 파산한 전체주의의 신봉자”라며 “자유세계는 독재국가 중국의 위협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상의 외교 관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거친 표현을 두루 사용하면서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그 후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갈등 전선을 기존의 무역, 금융 등에서 안보, 스파이, 백신 등으로 넓혀 갔다. 두 달 전 휴스턴의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하고 ‘중국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홍콩에 대해 특별지위를 철폐한 것은 그 신호탄이었다. 그러면서 미국은 혼자 중국과 맞서 싸우기보다 동맹국들의 참전을 유도하는 쪽을 택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제재에 동참해 달라고 압박하거나 미국 중심 경제 블록인 가칭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를 제안하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같은 미국 정부의 일련의 조치들은 역설적이게도 트럼프 대통령과 상극의 관계에 있는 민주당의 전폭적인 협조 덕분에 가능했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에 관여한 중국 관리 및 이들과 거래하는 은행을 제재하는 내용의 법안은 7월 초에 미국 상·하원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지난달 중국의 동영상 공유 애플리케이션인 ‘틱톡’을 연방정부 공무원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 역시 상원에서 한 명의 반대도 없이 그대로 통과됐다. 이 밖에 위구르 등 소수민족 인권 문제, 대만 이슈, 남중국해 분쟁 등 중국이 민감해하는 다른 분야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은 기본적인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처나 인종차별 등 국내 문제에서는 과하다 할 정도로 서로 싸우면서도 중국을 견제하는 것에 있어서는 이례적으로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의 대중 강경 기조는 지난달 전당대회에서 통과시킨 ‘2020 민주당 정책 강령’에 자세히 드러나 있다. 92페이지 분량의 이 자료에는 중국이 모두 22번 언급돼 있다. “민주당은 미국의 제조업을 약화시키는 중국에 공격적인 행동을 취한다”, “동맹국과 협력해 중국에 대항한다”, “위구르 등 소수민족에 대한 잔혹한 행위를 규탄한다” 등 중국을 공격하는 언급이 대부분이다. 특히 4년 전 정강에 보였던 ‘하나의 중국(One China Policy)’ 원칙이 이번에는 아예 삭제됐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바이든 후보가 당선될 경우 차기 행정부에서 대만 문제 하나만으로도 중국과의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 미국 내 반중 여론이 양당의 강경한 대응 부채질
미국의 외교안보 분야 석학이나 전문가들도 앞으로의 미중 관계를 그다지 밝게 보고 있지 않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미중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지난달 초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미중 양국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예전 미국과 소련보다 훨씬 긴밀히 연결돼 있는 ‘협력적 경쟁’ 관계”라면서도 “바이든 후보와 민주당도 (만약 집권한다면) 화웨이나 지식재산권 문제, 남중국해 이슈 등에서 중국을 거칠게 몰아붙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에 대한 양당의 강경한 자세가 최근 미국 여론의 반중(反中)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7월 말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중국에 ‘비호감’을 느끼는 미국인 비율은 73%로 조사가 시작된 2005년 이후 최고치에 올랐다. 반대로 호감을 느끼는 비율은 2010년 전후만 해도 50% 안팎에 이르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22%로 뚝 떨어졌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같은 반중 정서는 정치 성향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중국에 호감을 느끼지 않는 비율은 공화당 지지자(83%)와 민주당 지지자(68%)가 공히 절반을 훌쩍 넘겼다.
이런 미국 내 여론 지형도는 앞으로 누가 선거에서 승리하든 미국의 대중 압박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국제안보 분야 전문가인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에는 경쟁하듯이 중국에 더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는 선거 분위기가 있다”며 “따라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이기더라도 미중 관계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데이비드 브레이디 스탠퍼드대 교수 역시 본보에 “중국은 미국인들이 싫어하는 나라인데 이를 이용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전 부통령을 친중 성향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 중국 문제는 각 캠프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바이든을 소유하고 있다”, “중국은 바이든이 이기기를 바라고 있다”는 식의 말을 수시로 하면서 민주당을 코너로 몰고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도 이에 맞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며 반격하고 있지만, 과거 친중(親中) 행보 때문인지 ‘중국 때리기’ 경쟁에 있어서는 트럼프에게 다소 밀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이슈를 일치감치 선점한 결과일 뿐 실제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중국에 온화하다는 뜻은 전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국에 주재하는 한국의 한 외교 당국자는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가 말을 자주 바꾸거나 동맹을 경시하는 등의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하는 것이지, 중국에 너무 세게 나간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며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면 미국이 중국에 더 강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전 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에는 무역을 통해 중국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지만, 20년 뒤 대선후보가 된 뒤에는 중국을 독재국가라고 비난하고 있다”며 “두 나라의 이데올로기나 국민감정 등을 봤을 때 양국 간 갈등이 더 고조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바이든 당선 시 한국에 대한 압박 더 심해질 수도”
중국의 속내 역시 복잡해졌다. 이전까지 중국 내에서는 임기 내내 중국을 몰아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바이든 전 부통령의 당선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나치게 변덕스럽고 거친 언사를 자주 사용하긴 하지만, 올해 초 1단계 무역합의에서 보듯이 중국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거래’가 가능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전 부통령과 민주당은 인권이나 홍콩, 대만 문제 등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중국에 일관된 목소리를 내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적당히 ‘주고받을’ 수 있는 트럼프 정권보다는 이념적으로 완고한 바이든 정권에서 양국 간 패권 경쟁이 더 위험하게 치달을 수 있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970년대 맺었던 양국의 협력 관계는 이미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코로나19 사태가 이를 더 가속화할 것”이라며 “중국 입장에서는 ‘빅딜’이 가능하기도 한 트럼프 대통령보다 바이든 정부가 오히려 상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누가 당선되든 미중 갈등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갈등의 방식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가령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외교 정책이 지금과 비슷하게 대통령의 개인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결정되고, 따라서 중국 등 특정 국가에 공격이 집중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특히 통상 분야, 그중에서도 반도체 부문에서 과격한 정책이 취해질 확률이 높다. 반면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되면 미중 갈등이 보다 치밀하면서도 체계적인 전략하에서 관리될 것이라는 예측이 높다. 또 우방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배제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국 입장에서는 주변국을 무시하고 ‘마이웨이’로 치닫는 트럼프 행정부보다 동맹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상호 협력하기를 원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어쩌면 상대하기 더 까다로울 수 있다. 미국 주도 경제 블록에 참여해 중국에 공동으로 대항하자는 요구가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기 때문.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집권하면 경제번영네트워크 등 동맹국 간 경제 연합을 강화하고 국제 통상질서를 새로 만드는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미중 갈등이 장기화된다면 한국이 지금과 같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한계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 화웨이를 거래금지 기업 목록에 올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든, 동맹국과 연대를 강화하는 방식의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집권하든, 미중 간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시점은 앞으로도 여러 차례 올 수밖에 없다.
한국도 이에 대응하는 중장기 시나리오를 짜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임스 김 연구위원은 “미중 갈등이 신냉전으로 굳어진다면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어느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등 구체적인 외교안보 정책 프레임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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