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관장하는 ‘텔로미어’ 활용… 美서 노화 되돌리는 치료제 연구
텔로미어 복구하는 효소 이용 항암 유전자 치료제 연구 활발
“당신의 미래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임상시험에 신청하세요.”
미국 캔자스주에 본사를 둔 바이오벤처 리벨라 진 테라퓨틱스는 지난해 10월 ‘100만 달러를 내면 생체 시계를 최소 20년은 되돌려주겠다’는 임상시험 참가 요청 공고를 냈다. 텔로머레이스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제를 임상시험에 사용하며, 임상윤리심의위원회(IRB)의 승인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해 말 기준 79세 노인을 포함한 두 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체의 노화와 수명을 결정한다는 ‘텔로미어’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염색체 손상을 막아주는 덮개 역할을 하는 텔로미어와 이를 복원하는 효소인 텔로머레이스를 이용하면 노화를 방지하고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인간의 체세포는 분열을 거듭하면서 마디가 잘려나가는데 텔로미어가 있는 끝부분까지 모두 잘려나가면 죽는다. 텔로머레이스는 염색체 말단에 있는 특정 염기서열 구조인 텔로미어를 복구하는 효소다. 텔로머레이스가 발현되면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아 세포 노화를 방지하므로 신체 노화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텔로미어의 역설’이다. 암세포에서는 텔로미어가 줄어들지 않고 무한 증식한다. 지금까지 연구에서 암세포의 90%는 텔로머레이스 역전사효소(TERT)가 과발현된 결과다. 윤채옥 한양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노화를 막으려면 텔로미어가 길어야 하는데, 암세포를 없애려면 텔로미어가 짧아야 한다”며 “텔로미어를 잘못 조작하면 정상세포가 암세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텔로머레이스를 이용한 노화 방지용 유전자 치료제로 임상시험에 진입한 사례는 없다. 임상시험 요청 공고를 낸 테라퓨틱스도 시험을 시작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시애틀에 본사를 둔 바이오벤처인 바이오비바의 엘리자베스 패리시 대표가 2015년 콜롬비아에 가서 직접 자사의 노화 방지용 유전자 치료제를 투입했고, 이듬해 자신의 텔로미어가 길어졌다고 발표한 적은 있지만 미국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지 않는 등 공식 임상시험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텔로머레이스를 항암 유전자 치료제로 활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본 생명공학기업인 온코리스는 피부암인 흑색종을 치료하는 항암 유전자 치료제 ‘텔로머라이신’으로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텔로머레이스가 있으면 스위치가 켜지는 단백질(프로모터)을 치료제에 달고, 이를 아데노바이러스에 담아 암세포로 운반해 암세포만 죽인다. 나스닥 상장사인 미국의 제론은 골수이형성증후군 후보 치료제로 텔로머레이스 억제제인 ‘이메텔스타트’ 임상 3상을 올해 5월 시작했다.
윤 교수가 2014년 한양대 학내 벤처로 설립한 진메디신은 고형암 치료용(GM101), 췌장암 치료용(GM102), 전이성 폐암 및 간암 치료용(GM103) 등 텔로머레이스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홍진우 진메디신 연구원은 “GM101은 이미 대웅제약과 임상 1상을 마치고 현재 임상 2상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텔로머레이스를 이용해 텔로미어를 정확히 조종할 수 있다면 암세포 사멸뿐만 아니라 노화 연구에서도 진척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임상연구저널’ 8월 9일 자에는 텔로미어 길이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상관관계가 있다며 텔로미어 길이가 짧은 사람이 코로나19 감염에 더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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