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카드를 꺼내들었다. 12월 4일 개최 예정인 법무부 징계위원회에서 해임 중징계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후 추미애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해임을 제청하면, 문 대통령이 실행하면 그만이다. 윤 총장 제거작전이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이 모든 것을 기획한 자는 누구일까? 추미애 장관과 그 참모진일까?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 또는 핵심 측근들일까? 또는 두 팀의 합작일까? 합작으로 볼 수밖에 없다.
추미애, ‘자기정치’ 시나리오 짰나
시작은 문재인 대통령 팀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후임으로 추미애 장관을 간택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기대했을까? 처음부터 윤석열 제거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심약하거나 치밀한 사람은 할 수 없는 일,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하기엔 돌격대장이 제격이다. 정치적 야망으로 똘똘 뭉친 까닭에 물불을 가리지 않은 인물이다. 추 장관은 임명 직후 이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했다.
그때 다시 문재인 대통령 팀이 나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왜 더 강하게 밀어 붙이지 못하느냐고 추 장관을 몰아세웠다. 이렇게 자극하면 추 장관이 어떻게 반응할 지 잘 알기 때문에 자극을 한 것이고, 추 장관은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추 장관 팀이 계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과도한 청구서를 강요받고 보니 우리도 뭔가를 확실하게 챙겨야겠다는 생각이다. 추 장관 스스로도 설마 나를 불쏘시개로 쓰려는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을지 모른다.
추 장관 팀은 무엇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차기 대선이면 최상이고, 차기 서울시장이면 차선이다. 이렇게 판단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장을 거쳐서 가건 곧바로 가건, 궁극적 목표는 대통령이다. 그래서 일정표를 짰을 것이다. 서울시장에 출마할 경우 일정표와 차기 대선에 출마할 경우 일정표다. 그 다음에 일단 서울시장 출마를 전제로 한 일정관리에 들어갔을 것이다. 만약에 내년 봄 재보선 때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면, 연말연시 개각 때 정치권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판단도 그 연장선에서 내려졌을 것이다.
그 다음에 한 일이 뭘까? 연말연시 복귀를 전제로 역순으로 마무리해야 할 일을 정리했을 것이다. 마무리해야 할 일 가운데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은 윤석열 제거다. 그런데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몇 개월간 자진 사퇴를 유도하고자 전방위 압박을 가했지만, 윤 총장은 여전히 버티는 중이다. 윤 총장 제거 미션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문재인 대통령도 민주당 내 핵심 친문계도 정치권 복귀를 허락할 리 만무하다. 이번에 복귀하지 못하면 내년 재보선 서울시장 출마는 물 건너간다. 더 나아가 자칫 임기 말 순장조로 전락하면서 차기 대선 출마에도 차질이 발생할지 모른다. 그래서 초조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런 조급함이 낳은 것이 바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시도와 직무배제 명령 그리고 징계청구다. 감찰→직무배제→징계 절차를 촘촘히 엮은 이유도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쳐 윤 총장으로부터 자진 사퇴를 받아내면 최선이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취했다며 발을 뺄 근거는 충분히 마련하는 셈이다. 징계위원회를 개최한 결과 해임 결정까지 만들어내면, 9할까지는 사퇴를 성사시켰다고 주장해도 납득이 갈 수준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존재한다. 마치 윤석열 제거 미션을 마무리한 것 같은 착시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독약’이 든 검찰총장 해임 제청
이 경우 해임을 제청하는 방식이라고는 하지만, 윤 총장을 해임하는 주체는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다. 산해진미를 진상하는 것처럼 포장을 했지만, 그 속에는 독약도 포함돼 있다는 의미다. 그것이 뭘까? ‘검찰개혁의 무산’이다. 검찰개혁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검찰총장 임기 보장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자신의 저서 ‘운명’에서 이 부분을 강조한 터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마련된 중요한 제도가 검찰총장 임기제로, 임기를 지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민정수석 시절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반발해 김종빈 검찰총장이 자진사퇴를 했을 당시 2005년 10월 16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검찰권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바로 검찰총장 임기제이다. 이 검찰총장 임기제를 확립하는데 굉장히 많은 역사적 시간이 소요가 됐다. 그리고 법률적으로 임기제가 도입된 후에도 계속 보장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는 그런 사례들도 있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저희 정부는 앞의 정부에서 임명된 검찰총장에 대해서도 임기를 보장하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고 전임 총장의 경우도 임기를 다 채우도록 보장을 했다. 이렇게 검찰총장의 임기가 보장됨으로 해서 이 검찰총장이 일종의 방파제가 돼서 정치권이든 또는 일반 논의든 또는 검찰 내부의 어떤 이런 저런 압력이든 이런 것을 검찰이 극복을 하면서 정치적 중립이나 독립을 확보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도 검찰총장이 이렇게 보장된 임기, 다하지 못하고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만둔다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생각한다.”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반발해 자진 사퇴를 하자 그것이 오히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한 것이다. 만약에 윤석열 검찰총장이 어떤 이유에서건 임기를 채우지 못한다면, 마찬가지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지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바로 함정이다. 그런데 이것은 문재인 대통령 개인 차원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화 세력의 존재이유를 위협하는 결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은 민주화 세력의 가열 찬 요구사항 중 으뜸에 해당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도 이것을 최고의 개혁과제로 꼽았다. 그 오랜 항쟁의 역사를 일순간 그것도 스스로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 문재인 정부 하에서 대통령에 의해 이뤄진다면,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기술할까? 절대 긍정적 평가를 내놓진 않을 것이다.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개최되는 순간, 국면은 ‘일수불퇴’(一手不退)의 상황으로 접어든다. 해임 중징계가 나오더라도 위와 같은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은 실존적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여론의 역풍과 역사적 부정평가도 감수해야 한다. 경징계가 나오더라도 문제다. 추미애 장관의 최근 결정, 곧 감찰, 직무배제, 징계회부 조치가 모두 무리한 것이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추미애 장관을 문책성 ‘경질’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윤석열 검찰총장은 임기 만료 전까지 더 이상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법무부 징계위원회 개최를 연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추 장관의 최근 조치가 절차적 정당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을 근거로 새로운 장관 임명 뒤에 감찰부터 절차를 다시 밟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도 추 장관의 경질을 전제로 하는 시나리오다. 다만, 추 장관에게 곧바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는 퇴로는 마련해주는 방식이다. 사실 추 장관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서울행정법원과 법무부 감찰위원회도, 심지어 대한법학교수회도 ‘판정패’를 선언한 상태다.
헌법에 명시된 적법절차 위반
이 중에서도 특히 대한법학교수회의 성명서 내용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핵심 친문계의 자가당착, 그 정곡을 찌른다.
“검찰총장의 직무를 즉시 정지시킨 결정은 성급하고 과도한 것으로 헌법이 정한 적법절차를 위반했다고 판단된다. …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요청과 동시에 내려진 그 직무정지 결정은 <사실 인정을 위한 증거수집 절차와 적정한 수사권의 행사>를 무시하거나 남용한 것으로 우리 헌법이 정한 적법한 절차와 형사법과 검찰청법 등 실정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본다. … 금번 법무부장관의 처분은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검찰을 수백 년 전으로 회귀시켜 권력의 검찰로 퇴행시킨 행위로 역사를 거스르는 처사인 것이다.”
박정희 시대도 이승만 시대도 아닌 조선시대로 되돌리려 하느냐는 뼈아픈 지적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 팀은 추미애를 활용한 ‘차도살인’(借刀殺人)을 기획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추미애 장관의 칼은 무뎠고, 그 칼은 오히려 우군을 위협하기조차 했다. 더 나아가 표적의 멱을 깔끔하게 따지 못한 상태에서, 주군에게 직접 베라고 대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베고 말지가 결국 주군의 몫으로 떨어지고 말았지만 여전히 고민스러운 것이다. 필생의 좌우명을 깨야 하기 때문이다. 그 좌우명이 본인이 왕좌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는 순간, 민심은 다시 한 번 요동칠 것이고, 분노한 민심은 반란을 꿈꾸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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