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던 상반기 한미 연합훈련이 18일 종료됐다. 8일부터 9일간 야외 기동훈련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만 치러진 이번 훈련은 어느 연합훈련 때보다도 변수가 많았다. 훈련 실시 여부나 규모, 방식 등 세부 내용을 확정하기까지 군 당국의 복잡한 속내는 훈련 전날인 7일 “한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과 전투준비태세 유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 지원 등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합동참모본부의 공식 입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매년 두 차례 이뤄져 온 정례훈련이 논란거리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남북 대화의 재개 조건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내걸면서부터다. 같은 달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에 맞춰 현 정부 임기 내(2022년 5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가속화하려던 정부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은 셈. 한국군 4성 장군(대장)이 사령관을 맡는 전작권 전환 이후 미래연합사령부 운용 능력 2단계 검증(FOC·완전 운용 능력)을 연합훈련에서 실시하려면 훈련의 규모 확대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임기 말 ‘남북관계 개선’과 ‘전작권 전환 가속화’란 딜레마에 빠진 가운데 정부 부처 내 이견도 커져 갔다고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연합훈련 유예나 규모 축소를 거론하면서 서욱 국방부 장관이 난감해했다는 말이 나왔다”고 전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여파로 연합훈련 때마다 통상 2000여 명의 미 본토 증원 병력도 사실상 입국하지 못했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 들어 처음 치러진 이번 연합훈련은 규모가 최소화된 채 FOC 검증은 예행연습만 이뤄졌다. 코로나19 상황과 FOC 검증 실시에 미온적이던 미국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부가 전작권 전환 대신 남북관계 개선에 힘을 실은 모양새가 된 것. 합참은 훈련 실시를 발표하면서 연합훈련이 ‘연례적이고 방어적 성격의 훈련’임을 강조했다.
○ ‘컴퓨터 시뮬레이션’ 어떻게 진행되나
주말을 제외하고 통상 2주에 걸쳐 진행되는 연합훈련은 한반도 전면전을 가정해 한 주씩 1부 방어연습과 2부 반격연습으로 구성된다. 이번 훈련에선 한미 장병들이 서울 용산구 합참 지하벙커와 수도방위사령부가 관할하는 남태령의 B-1 문서고, 경기 성남시 미군 CP탱고에 모여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지켜보며 전쟁 수행 절차와 능력을 숙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미연합 작전계획인 작계5027을 기반으로 한 가상의 시나리오는 매번 연합훈련마다 달라진다고 한다. 2010년 시나리오에 있던 ‘김정일 생포 작전’이나 ‘평양 점령’ 등 특정 상황을 가정하는 방식이다. 다만 북한이 동·서부전선으로 남침했을 때 이를 1, 2차 저지선까지 방어하고 다시 평양이나 개성까지 병력을 이동시켜 반격하는 기본 골격은 유지된다.
사령부와 군단, 사단 등 각 부대 밑에 작전 정보 군수 인사 등 각 군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셀)이 편성되고 지휘관이 병력 운용에 대한 결심을 내리면 각 셀에서 컴퓨터상으로 병력을 이동시키거나 공격을 수행한 뒤 그 결과를 상부에 보고한다. 특히 이번 훈련에선 국지도발 상황뿐 아니라 한미 해병대의 상륙기동 시나리오도 포함됐다. 올해 말 강원 고성·삼척 일대를 책임지는 육군 8군단이 해체되는 만큼 이에 대비한 대응 시나리오도 연습했다.
다만 연합훈련 때마다 대규모로 전차들이 이동하고 해병대가 해안에 상륙하는 익숙한 풍경은 자취를 감췄다. 시뮬레이션과 함께 진행돼 오던 연대급 이상의 야외 기동훈련이 3년째 멈춰 있기 때문이다. 한미는 2018년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 다음 해부터 매년 3, 4, 8월에 진행되던 키리졸브(KR·컴퓨터 시뮬레이션)와 독수리훈련(FE·야외 기동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폐지하고 연 2회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연합지휘소훈련(CPX)을 실시하고 있다.
○ 文정부 들어 규모 축소 이어져
군 안팎에선 현 정부 들어 연대급 이상의 야외 기동훈련이 이뤄진 시기는 2018년 4월 독수리훈련이 마지막이라고 보고 있다. 군은 2019년 이 훈련을 폐지하면서 2018년 시작된 북-미 비핵화 협상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예하 부대의 기동훈련은 대대급 이하로 규모가 간소화됐다.
미군과 우리 육군의 포병·보병·기갑전력이 참여하는 연합화력훈련도 2017년 4월을 마지막으로 실시되지 않고 있고 연대급 이상으로 실시됐던 대규모 연합상륙훈련인 쌍용훈련과 대규모 연합공군훈련인 ‘맥스선더’ ‘비질런트에이스’ 등도 폐지되거나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이어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부터는 소규모 기동훈련은 물론이고 시뮬레이션 참가 병력의 규모마저 더욱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전 정부에서 연합훈련 규모가 계속 확대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6∼2017년 키리졸브·독수리훈련 당시 미 증원 병력만 1만5000명 이상이 동원돼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을 비롯해 F-22 스텔스 전투기, B-52 전략폭격기 등 각종 전략자산이 대거 한반도로 전개됐다. “중소 국가 2, 3개국 군사력과 맞먹는 과거 참가 전력과 비교하면 지금 연합훈련은 훈련도 아니다”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미군 내부에서도 대규모 야외 기동훈련이 중단된 현 상황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최근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연합훈련이 컴퓨터게임이 돼가는 건 곤란하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부터 공식석상에서 한미 연합군의 훈련 부족과 미군의 훈련 여건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며 불만을 토로해 왔다. 미군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으로 불가피하게 훈련 규모를 축소한 점도 있지만 미군 내부에선 한국 군 당국의 훈련 의지가 부족하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옆 나라 일본에선 오히려 대규모 야외 기동훈련의 빈도가 늘고 있다. 미 해군의 시어도어루스벨트 항모강습단은 지난달 28일 괌 일대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기동훈련을 실시했다. 2019년 일본 방위백서에 따르면 자위대는 한 해 동안 총 38회, 연장 일수로 406일간 미군과 연합훈련을 했다. 미국과 일본이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대규모 야외 훈련은 10종이 넘는다고 한다.
○ 연합훈련 명분 삼아 北 도발 나설 수도
연합훈련 규모가 크게 줄어들면서 군 안팎에선 정부가 과도한 ‘북한 눈치 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많다. 한 군 관계자는 “정부는 (훈련 규모 축소가)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하지만 북한의 반발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했다. 이를 증명하듯 통일부는 8일 “연합훈련이 유연하고 최소화한 형태로 진행되는 만큼 북한도 우리의 이러한 노력에 상응하는 태도를 보여 달라”는 입장을 냈다.
북한이 연합훈련에 반응한 건 훈련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6일.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에서 연합훈련을 ‘북침 전쟁연습’으로 규정하고 “3년 전(2018년)의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또 “남조선 당국은 또다시 따뜻한 3월이 아니라 ‘전쟁의 3월’ ‘위기의 3월’을 선택했다”며 “이번의 엄중한 도전으로 임기 말기에 들어선 남조선 당국의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이전부터 연합훈련을 노골적으로 비난해왔다. 북한은 2011년에 인민군 판문점대표부 성명을 통해 “상상할 수 없는 전략과 전술로 온갖 대결책동을 산산이 짓부수어 버리는 서울 불바다전과 같은 무자비한 대응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2016년 노동신문에선 “증오와 분노는 청와대와 백악관을 비롯한 악의 소굴들을 잿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은 1993년 방북한 게리 애커먼 당시 미 민주당 하원의원을 만나 손을 부들부들 떨며 “팀스피릿 훈련이야말로 침략을 위한 최종 연습”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북한이 연합훈련 직후 한미를 겨냥한 미사일 도발을 감행할 거란 관측도 제기된다. 규모가 축소됐어도 훈련이 실시된 데다 17일부터 이틀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방한해 한미 동맹 강화를 공언하는 등 도발 명분은 충분하다는 것. 실제 한미 정보당국은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생산하는 평양 인근 산음동 미사일공장의 특이 동향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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