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족쇄’ 20-21학번 “집에서 나홀로 스펙쌓기… 번아웃”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6일 03시 00분


[위클리 리포트]코로나 충격 가장 크게 받은 20대, 정신건강 적신호
대학생활 못한 고교 4,5학년들
활동 못한 20대들 불안감 호소
상담받고 싶어도 갈 곳이 없다

《마음 아픈 20대 “상담할 곳 없어요”

코로나19로 인한 취업난, 사회관계 단절 등으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마음 건강은 초기 발견과 전문 상담이 중요하지만 청년들은 “사설 상담은 너무 비싸고 대학 상담센터는 예약이 꽉 차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고 토로한다.》


“서류에서 떨어진 회사만 20곳이 넘어요. 아무 데도 안 될 거란 불안함에 전신 근육통까지 왔어요.”

올 2월 졸업 후 한 사기업에 취업한 A 씨(23)는 최근 재취업을 준비하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A 씨는 첫 직장에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온갖 일을 도맡아 했고, 직장 내 따돌림까지 당해 입사 5개월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A 씨는 “서류 통과도 어려울뿐더러 면접에 가더라도 왜 퇴사를 했는지 물어오는데 ‘조직문화가 맞지 않고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어떻게 말하겠느냐”며 “안 그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취업이 힘든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 ‘우울증 진료’ 20대, 전년보다 21% 늘어

A 씨처럼 우울감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20대는 14만3069명으로 2019년보다 2만4880명(21%) 증가했다. 이 같은 증가율은 전 연령층 가운데 가장 높다. 이 기간 우울증 진료 건수가 총 3만2464건 증가했는데 20대 진료 건수가 증가분의 76.6%를 차지했다. 지난해 20대의 공황장애와 불면증 진료 건수 역시 전년 대비 14.6%, 6.7%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우울과 취업의 어려움, 사회관계 단절 등이 겹쳐 청년층의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라고 분석한다. 전덕인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활동성이 큰 20대를 중심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생활 변화의 충격이 가장 크게 온 것”이라며 “학교도 못 가고, 아르바이트나 취업 자리는 줄어들고, 외부 활동을 못 한 채 가족들과 부딪치는 빈도까지 늘면서 우울증 사례가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년층은 코로나19로 인한 환경 변화와 인간관계 단절 등으로 인한 불안감을 호소한다. 대학생 이모 씨(20)는 지난해 1학년 2학기 재학 중 공황장애 증세가 나타나 휴학했다. 이 씨는 동기인 20학번과 후배인 21학번 학생들에 대해 “코로나로 제대로 된 대학 생활 경험이 없다 보니 아직도 학점은 만점, 동아리에 대외 활동까지 모든 게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등학교 4, 5학년들”이라고 했다.

이 씨는 “주변 친구들이 인스타그램에 대외활동 증명서나 올 A플러스를 받은 성적표를 올리면서 다들 완벽한 스펙을 쌓는 데 몰두하고 있어 나도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 번아웃이 왔다”며 “거의 자취방에만 있는데 하루 종일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해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인간관계가 단절되면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해 9월 한 대기업에 입사했던 B 씨(25)는 입사 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서비스 기획자로 일했던 김 씨는 “사교적인 성격이라 힘든 일이 있으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풀어야 하는데 회사에서 수습 기간에 아무도 만나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는 취지의 지침을 내려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못해 고립감을 느꼈다”고 했다.

B 씨는 결국 올 2월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퇴사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등록했던 학원이 한 달 동안 강의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당초 계획대로 공부할 수 없게 됐다. 그는 “부모님은 내가 대학원 준비를 계속 하는 것으로 아는데 원하는 만큼 점수가 나오지 않고 공부하기도 지쳐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마음이 너무 답답해 8월부터 우울증 상담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삶의 변화가 트라우마로 남은 경우도 있다. 올해 초부터 공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는 김모 씨(24)는 “코로나19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며 “설령 종식되더라도 이 경험이 트라우마처럼 남을 것 같다”고 했다.

공연 관련 사업을 하는 김 씨의 아버지는 코로나19의 여파로 결국 파산했다. 대학교 4학년이던 김 씨의 삶도 180도 바뀌었다. 김 씨는 택배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공사판에서 일하며 1년을 버텼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졸업을 유예하고 회계사 공부를 하려던 목표를 접어야 했다.

김 씨는 “늘 불안감에 시달리지만 하루하루가 벅차다 보니 심리 상담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며 “지금도 적은 월급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했다.

○ 사설은 비용 부담, 학내 상담소는 ‘예약전쟁’

불안 증세를 호소하는 청년들은 전문적인 상담을 받고 싶어 하지만 청년들을 위한 상담 인프라는 여전히 취약한 실정이다. 공공 상담 기관의 경우 자살, 중증 우울증 등 우선순위에 따라 상담 자격이 주어진다. 사설 기관은 시간당 7만∼13만 원 수준인 비용 부담이 문제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약 등을 처방받을 경우 사설 상담 기관에 비해 비용 부담이 덜하긴 하다. 하지만 처방 기록 때문에 취업 과정에서 혹여 불이익을 받을까 봐 병원 진료를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취업준비생 강모 씨(30)는 “1년 전부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데 진료 기록이 남으면 나중에 불이익이 될지 몰라 병원비를 현금으로 결제하고 있다”며 “지인 중에는 기록이 남을까 봐 일부러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면 1회에 20만 원까지도 든다”고 했다.

대학들은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학생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부는 올 2월 대학생 마음 건강 지원 방안의 일환으로 대학 내 학생상담센터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재학생 1000명당 1명 수준의 상담 인력을 확보하고 전일제 전문 상담 인력을 증원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에 따르면 서울 소재 국공립·사립대학 29개교의 학생상담센터 전문 상담사는 총 299명이다. 산술적으로는 재학생 1000명당 1명 수준의 상담 인력을 확보한 셈이지만 학생들은 원활한 상담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 재학생인 윤모 씨(25)는 8월 취업 준비를 하며 가족들과의 갈등으로 우울 증세를 느껴 학내 상담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윤 씨가 정식 상담을 받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3개월 뒤인 지난달 말이었다. 윤 씨는 “그 순간에 절실하게 상담이 필요해서 간 거였는데 지금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한 번 연락을 했는데 ‘상담 신청이 너무 많아 언제 될지 모른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했다.

예약이 이미 꽉 차 상담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손모 씨(20)는 올해 여름방학 때 학생상담센터 예약을 시도하려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7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상담 일정이 모두 꽉 차 있어 이달부터나 신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손 씨는 “7, 8월 동안 빈자리가 나오는지 확인하려 내내 예약을 시도하다 결국 포기했다”며 “진로 상담과 전반적인 심리 상담을 받고 싶었는데 받지 못해 아쉬웠다”고 했다.

#코로나 족쇄#스팩쌓기#번아웃#20대#정신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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