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살,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 관련
피고발인 측 변호인 "적법절차 위반" 주장
검찰 "대통령기록물관리법 근거해 문제 없다"
법조계 "향후 재판서 증거능력 논란 가능성"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영장이 있는 검사만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검찰 관계자) “해당 법에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변호인의 참여권을 배제하는 조항이 없다.”(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측 변호인)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달 19일부터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가운데 ‘변호인 참여권’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 간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두 사건 관련 피고발인 측 변호인들은 검찰이 형사소송법을 형해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형사소송법에는 변호인이 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참여할 수 있고(121조), ‘급속을 요하는 때’가 아니면 검사가 변호인에게 미리 집행의 일시와 장소를 통지해야 한다는 조항(122조)이 있다.
● 변호인 측 “실질적 참여권 보장 안돼”
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6일 대통령지정기록물 압수수색 과정에서 박 전 원장 변호인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박 전 원장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첩보 보고서를 삭제한 혐의 등으로 7월 6일 국정원으로부터 고발당했는데, 이 날은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대통령기록관을 두 번째로 압수수색하던 날이었다.
박 전 원장 측 소동기 변호사는 이날 오후 검찰의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 당시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변호인의 실질적 참여권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당일 오후 1시반경 검찰의 연락을 받고 급히 압수수색 현장을 참관하러 갔지만, 검찰이 어떤 자료를 열람하는지 그에게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검찰 관계자들은 대통령기록관 열람실에 놓인 테이블에서 노트북으로 자료를 열람했다. 그러면서 그에겐 별도의 칸막이가 있는 공간에 들어가 앉아 있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그는 “검찰이 어떤 자료를 가져가는지 변호인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면 이 자리에 왜 불렀느냐”고 항의했다.
검사와 기록관 직원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근거한 조치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은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한 경우 열람할 수 있다’고 돼 있는 만큼 영장을 소지하지 않은 변호인은 자료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는 “보호기간 중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열람을 허용하는 법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변호인 열람을) 허용할 수 있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소 변호사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검찰은 압수 목록을 말로 불러주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응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 대통령기록관 측에 따르면 소 변호사가 현장을 떠난 이후 검찰은 압수수색을 계속 진행했다고 한다.
변호인들은 검찰이 압수수색 일정을 통보하는 방식 역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한 피고발인 측의 변호인 A 씨도 압수수색 일정 통보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A 씨는 “지난달 19일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고 검찰에 항의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세종시에 위치한 대통령기록관에 도착한 한 뒤에서야 뒤늦게 "서울에서 올려면 오시라"는 식으로 통보한 것도 실질적인 참여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A 씨의 경우 이후 22일 추가 압수수색에 참여했지만, 소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압수 목록과 내용을 직접 보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을 전후로 진행된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과정에서도 변호인들은 모두 관련 대통령지정기록물을 보지 못한 채 검찰이 불러주는 내용만 메모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참여한 변호인 B 씨는 "자괴감을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 법조계 “재판 과정서 증거능력 논란될 수도”
법조계에서는 만약 관련 피고발인들이 기소돼 재판 받을 경우 증거 채택 과정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변호인의 실질적 참여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경지법의 부장판사는 “변호인이 검사 옆에서 압수 목록과 내용을 보면서 혐의사실과 관련된 것인지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며 “절차 위반임이 인정될 경우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증거를 재판에서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 스스로도 변호인이 배제되는 일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형사소송법에 변호인의 참여권 보장 조항이 있는데도, 대검찰청은 지난해 1월부터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전 과정에서 변호인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실무규정에 명시했다. 대검의 ‘디지털 증거의 수집·분석의 관리 규정’에 따르면 주임검사 등은 압수·수색·검증의 전 과정에 걸쳐 변호인의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
최근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기본적으론 대통령기록관과 동일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은 매우 제한적인 방법으로 열람이 가능한 만큼 변호인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6일을 제외한 압수수색의 경우 진행 방식에 대해 변호인들의 동의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고등법원의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영장 발부과정 당시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에 대해선 목록과 내용물 등을 나눠 두차례 영장이 발부된 것과 달리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서는 검찰이 한 번에 목록과 내용물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 차례 심사한 것에 대한 불만도 제기된다. 변호인 B 씨는 "대통령지정기록물에 대한 압수수색 전례가 많지 않다보니 법규정이 세밀하게 규정되지 못하고 대통령기록관에서도 보수적으로 법규정을 해석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 관련 법규정이나 지침을 명확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변호인과 검찰, 대통령기록관 등 3자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안을 찾기 위한 입법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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