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과정과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까지 처음 공개하면서 핵무력 보유와 개발의 끈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일 글에서 “핵무기를 질량적으로 강화하겠다”고 세 차례나 언급하면서 그 명분을 “후대들의 밝은 웃음을 위하여”라고 내세웠다. 북한 안보의 시작과 끝은 ‘핵’임을 거듭 확인한 셈이다.
●딸 공개 이면엔 “핵포기 절대 없다” 의지
조선중앙통신은 19일 “(김 위원장이) 사랑하는 자제분과 여사(리설주)와 함께 몸소 나오셨다”고 전하면서 처음으로 딸의 모습이 담긴 사진 3장을 공개했다. 흰 패딩과 검은 바지 차림에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는 김 위원장의 손을 잡고 ICBM 발사장을 바라봤다. 조선중앙TV는 20일 김 위원장이 딸을 뒤에서 꼭 안아 발사장면을 모니터하는 모습, 딸이 오른손에 회중시계를 쥔 채 무언가를 응시하는 모습,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딸이 셋이서 나란히 걷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도 공개했다.
이 딸은 2009년 결혼한 김 위원장과 리설주의 둘째 ‘김주애’로 추정된다. 미국의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먼이 2013년 방북 후 언론에 “그들의 딸 ‘김주애’를 안았다”고 밝혀 알려졌다. 정보당국 분석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리설주는 2010년 득남한 뒤 2013년 이 딸을 낳았고, 2017년 막내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딸이 동원된 배경으로는 후계 구도 시사보다는 ‘핵개발 지속화’에 무게가 실린다. 김 위원장이 2018년 4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1차 방북 당시 “자녀들이 평생 핵을 지니고 살기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알려졌지만 이를 뒤집고 비핵화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발신했다고도 볼 수 있다.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의 제니 타운 편집장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대를 이어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북한이 다시 협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다정한 모습을 통해 이미지 반전을 꾀하면서 핵무기 시험의 일상화 및 정당화를 노린 다목적 포석으로도 볼 수 있다. 10월 연쇄 탄도미사일 도발에 처음 나타났던 리설주가 다시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당국자는 “딸과 부인을 데리고 미사일을 쏘게 되면 강성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 있고 주민들에게 후대의 안전까지 담보한다는 안심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주홍 경기대 석좌교수는 “자상한 어버이 역할을 인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일종의 쇼맨십”이라며 “핵 외에는 대안이 없고 미래 세대의 안보도 핵으로 책임지겠다는 의지”라고 평가했다.
●北 “핵에는 핵, 정면 대결에는 정면 대결로”
북한은 화성-17형이 발사된 18일을 ‘사변적인 날’이라며 연일 고무된 분위기를 이어갔다. 북한 매체들은 19일과 20일 ‘핵에는 핵으로 정면 대결에는 정면 대결로’라는 구호를 거듭 앞세우며 자위적 핵무력 강화의 정당성을 선전했다. 신문은 20일 “미국의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력 강화의 길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이처럼 ‘핵무기=핵억제’ 공식을 반복하는 것은 내부 결속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달 초 하루 탄도미사일 발사 비용이 1년 치 쌀값에 달한다’는 미 랜드연구소의 분석처럼 경제적 궁핍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민심 이반을 달래려면 미사일 시험발사가 외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위력을 강화해야 하는 수단임을 강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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