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좋아하시나요. 옛 중남미 아스테카 제국 왕이 즐겨 마셨던 초콜릿 음료가 1500년대 유럽으로 건너가 특권층 사치품이 되었고, 1800년대 들어 우리가 아는 고체 형태 초콜릿이 생겨났는데요. 이 초콜릿이 다시 비싼 사치품이 되게 생겼단 얘기가 나옵니다. 원료인 코코아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코아 가격이 왜 이렇게까지 뛸까요. 흔히 기후변화와 질병 확산을 이유로 꼽는데요. 한 꺼풀 아래를 들춰보면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이 드러납니다. 포퓰리즘과 인플레이션, 부패한 관료와 중국자본의 침공까지. 생각보다 복잡하고 중요한 이야기, 아프리카 코코아 공급 쇼크를 들여다봅니다.
초콜릿으로 유명한 미국 제과업체 허쉬가 지난 8일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애널리스트 질문이 가장 많이 쏟아진 주제는 코코아 가격. 마이클 벅 CEO는 코코아 가격이 “역사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며 “올해 수익 성장이 제한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동시에 “코코아 가격을 고려해, 제품가격 조정을 포함한 모든 도구를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초콜릿 가격 인상을 예고한 셈이죠.
오레오로 유명한 제과업체 몬덜레즈는 이미 2023년 초콜릿 제품 가격을 12~15% 올렸는데요. CEO인 더크반데풋은 지난달 실적발표에서 코코아 인플레이션에 맞서 올해도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도대체 코코아 가격이 얼마나 올랐냐고요. 역사상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준과 속도로 값이 뛰고 있습니다. 21일 기준 코코아 선물 가격은 t당 6198달러. 사상 최고가일 뿐만 아니라, 지난 1년 동안 126%나 상승했죠. 특히 올해 들어서만 42% 올랐을 정도로 최근 상승세가 가파른데요. 2월 들어서는 거의 매일 신고가를 기록 중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헤지펀드들이 앞다퉈 코코아 선물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격 상승폭을 더 키우고 있죠.
씨티그룹은 최근 고객에 보낸 메모에서 “코코아 가격 리스크가 t당 7000달러, 또는 1만 달러(!)까지 유지될 수 있다”고 밝혀 업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물론 1만 달러는 좀 극단적인 전망이긴 한데요. 금융위기 이후 약 15년 동안 유지된 t당 2500달러 안팎의 ‘값싼 코코아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수출할 코코아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코코아 최대 산지인 서아프리카의 작황이 극히 부진합니다. 서아프리카, 그중에서도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는 세계 1, 2위 코코아 산지이죠. 전 세계 코코아의 60%가 여기서 나옵니다.
2월은 이들 지역의 코코아 수확이 정점이어야 하는 시기인데요. 코코아를 실어 나르는 트럭이 꽉 들어차서 정신없이 바빠야 할 주요 항구가 한산합니다. 두 나라 모두 전년보다 수확량이 35%나 급감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자국의 코코아 판매를 독점하는 코트디부아르 정부기관이 최근 선도계약 판매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해마다 정부기관은 실제 공급 시점보다 12개월 앞서 해외 고객사와 수출 계약을 맺어왔는데요. 작황이 워낙 불확실하다보니, 이번엔 포기한 겁니다. 기존에 계약해둔 물량조차 도저히 맞출 수 없을 지경이니까요. 결과적으로 이렇게 가격이 급등한 시점에 판매를 못 하게 됐으니,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코코아 흉작 때문에 큰일 났단 얘기는 지난해 여름부터 나왔습니다. ‘검은 꼬투리병’이란 코코아나무엔 치명적인 곰팡이 감염병이 이 지역을 휩쓸었죠. 이상기후로 평소 강우량의 2배에 달하는 장맛비에 홍수가 났고, 그게 병으로 이어진 건데요.
악천후와 질병 때문이라니. 그럼 지금의 코코아 공급 쇼크는 천재지변인 걸까요. 국제코코아기구(ICCO)를 포함한 업계 얘기는 다릅니다. ICCO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하죠. “현재 진행 중인 공급 부족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 견해입니다.”
투자하기엔 너무 가난한 농부
서아프리카 코코아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겁니다. 너무 가난한 코코아 농부들.
앞에서 검은 꼬투리병이 휩쓸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병 확산을 막으려면 살균제를 사서 뿌리고, 인력을 동원해 병든 나무는 빨리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 묘목을 심어서 다시 수확량 늘리기에 나서야 하는데요. 그 모든 것엔 돈이 드는데, 코코아 농부들은 그럴 돈이 없습니다.
가나의 코코아 농부 사무엘 아도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죠. “코코아 농사를 시작한 이래 농장이 이렇게 심하게 공격당한 건 처음이에요. 내가 벌어들이는 돈은 농장에 다시 투자하기에 충분치 않아요.”
코트디부아르엔 약 100만명, 가나엔 약 80만명의 코코아 농부가 있습니다. 코코아는 두 나라의 중요한 수출품이자 외화벌이 수단이죠. 특히 이 지역 코코아는 지방함량이 높고 풍미가 뛰어나서 글로벌 시장에서 더 높게 가치를 쳐준다는데요. 하지만 코코아 농부들은 한 번도 부유해진 적이 없습니다. 이 소규모 자작농들은 늘 가난합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코트디부아르 농민 절반이 하루 1.2달러(약 1600원) 미만으로 생활하죠.
왜 농부들은 가난할까요. 혹시 중간 유통업자의 착취 때문일까요. 그렇게 보긴 좀 어렵습니다.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 코코아의 원산지 가격을 정하는 건 업자가 아니라 정부입니다. 정부가 1년에 한번 그해 코코아 구매가격을 결정해 발표하죠. 정부와 여당은 대체로 해마다 그 가격을 인상해오며 농부들을 달래왔습니다.
가나의 경우를 볼까요. 지난해 9월 가나 대통령은 새 시즌(2023년 10월~2024년 9월) 코코아 한봉지(64㎏) 가격을 800세디에서 1308세디로 대폭 인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무려 63%나 한번에 올린 거죠. 대통령은 “서아프리카 코코아 농부에 지급되는 것 중 최고의 가격이다. 정부가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라고 연설했고요. 발표 현장에 있던 가나 농부들이 우렁찬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기뻐했는데요.
아니, 이렇게 가격을 올려주면 농부들 형편이 조금이나마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게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인플레이션이 다 까먹었다
2016년 가나의 코코아 콩 구매가격은 봉지당 475세디. 이후 정부가 해마다 가격을 올려서 2023년 1308세디가 됐으니 명목상으론 농부들이 버는 돈이 3배 가까이로 늘어났죠.
그런데 이걸 달러로 환산해보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같은 기간 가나 통화가치는 급락했고요(2016년 1달러당 3.9세디→2023년 11.05세디). 따라서 달러로는 코코아 가격이 121.8달러에서 118.4달러로 오히려 떨어졌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동시에 인플레이션은 극심합니다. 2022년 12월 가나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54%. 이후 조금 안정됐다지만 2023년 12월에도 23%를 기록했는데요. 비료·살충제 가격은 물론 인건비와 생활비, 교육비까지. 모든 게 다 뛰면서 농부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도 남는 게 없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코코아 농부의 부를 죄다 까먹고 있습니다.
그럼 왜 통화가치는 급락하고 물가는 급등했을까요. 정부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한 탓이 큽니다. 가나는 서아프리카에서 드물게 선거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가인데요. 대신 선거철만 되면 정부가 퍼주기 정책을 남용합니다. 예를 들어 고교 수업료를 폐지하고, 전력기업에 대출을 연장해줘서 전기요금을 낮추고, 부도 위험 은행에 자금을 투입해 살렸죠.
그러느라 국가부채가 급증하면서 외환보유고가 텅 비고 국가신용도는 뚝뚝 떨어졌고요. 해외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게 되자 정부는 중앙은행을 동원해 돈을 찍어내서 펑펑 썼습니다. 결국 2022년 말 가나 정부는 해외 채권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고요. 지난해 5월 또다시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됐습니다. 방만 재정의 끝은 파탄 난 경제와 고통받는 서민입니다. 코코아 농부들의 가난 역시 그 연장선에 있죠.
산유국과 코코아 수출국의 차이점
그렇다고 코코아 수출국의 가난이 전부 정부 탓이라고만 보긴 어렵습니다. 천연자원이 풍부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석유가 많은 중동과 달리 코코아가 많은 서아프리카는 가난한 건 왜일까요. 석유와 코코아가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죠.
산유국은 생산량과 가격에 대한 통제권이 있습니다. 가격을 높이고 싶으면 유정의 파이프 밸브를 잠그기만 하면 됩니다. 석유는 땅속에 묻혀있을 거고, 어디로 사라지거나 썩지 않죠. 반면 코코아나무는 잠깐 성장을 멈추게 할 수도, 갑자기 빨리 자라게 할 수도 없습니다. 수확량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으니, 생산국이 국제 가격을 통제할 수 없죠. 환율은 더 예측 불가이고요. 애초에 코코아콩을 팔아 부자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게다가 석유와 달리 코코아는 한정된 경작지를 두고 다른 자원과 경쟁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코트디부아르에선 그 상대가 고무이죠. 타이어 관련 수요가 늘면서 광대한 고무나무 농장이 이곳에 속속 들어서는 추세인데요. 고무나무는 코코아나무보다 관리가 더 쉽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이 코코아를 버리고 빠르게 고무로 돌아섰고 있는 겁니다. 가나에선 코코아가 금과 맞서야 합니다. 가나는 아프리카의 최대 금 생산국인데요(세계 7위). 이른바 ‘갈람세이(galasey)’라고 부르는 불법 소규모 금 채굴광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코코아 농장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가나의 한 농부는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 채굴업자들에게 코코아 농장을 내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죠. “그들은 내게 매달 500달러를 줘요. 나는 코코아 재배로 그렇게 많은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그걸로 만족해요.”
여기서 알아둘 점은 갈람세이 업자 중 상당수가 중국인이란 점입니다. 곡괭이와 삽을 이용하던 과거의 영세 채굴업자와 달리, 2006년부터 가나로 몰려든 중국인들은 중장비를 동원해 금을 파냅니다. 이로 인해 코코아 경작지는 더 황폐화되고 있고요. 이들이 이렇게 불법을 저지르며 활개치게 된 건 가나 이민 당국과 경찰 등 관료들의 무능과 부패 탓이 큽니다.
서아프리카의 코코아 공급 쇼크를 파헤치다 보니 이와 연관된 문제점이 한둘이 아닌데요. 그래서 시장 원리대로라면 ‘코코아 가격 급등→코코아 재배 증가→공급량 확대→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겠지만, 이 지역에선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가나 정부기관인 코코아위원회 관계자는 “코코아 농장 재건에 5년이 걸릴 것”이라면서 “국가 경제위기가 이런 노력에 방해가 되고 있다”고 전하는데요.
이런 상황은 서아프리카 이외 코코아 생산국엔 기회이죠. 에콰도르·브라질·페루·인도네시아·베트남 같은 나라에선 코코아나무 심기 붐이 일지 모릅니다. 그럼 이 작은 원자재 시장은 또 어떻게 출렁거리게 될까요. 혹시 ‘가나는 코코아, 코코아는 가나’라는 말(OECD 보고서에서 인용)이 옛날얘기가 되는 날도 오려나요. By.딥다이브
화요일 뉴스레터에서 블룸버그의 코코아 관련 기사를 짧게 전해드렸더니, 한 구독자분이 ‘코코아 재배 농민 수익을 유통업자가 확보해줘야 하겠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유통업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니 정부이더군요. 그때부터 파고 들어가 이 기사를 쓰게 됐습니다. 좋은 의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주요 제과업체가 초콜릿 가격 인상을 예고했습니다. 코코아 가격이 무섭게 뛰면서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기 때문인데요.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코코아 생산량이 35%가량 급감해 공급 부족에 시달립니다.
-표면적으로 수확량 급감의 원인은 ‘검은 꼬투리병’입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코코아 농부들이 너무 가난해서 살균제나 새 묘목을 살 돈이 없다는 거죠. 정부는 해마다 코코아 구매 가격을 높여줬지만 극심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농부들은 점점 더 가난해집니다.
-결국 경제를 파탄 내고 인플레이션을 치솟게 만든 정부 탓이 큽니다. 동시에 수확량을 수시로 마음껏 조절할 수도 없고, 경작지를 두고 다른 자원과 경쟁해야 하는 코코아라는 원자재가 가지는 한계이기도 하죠. 정말 코코아 가격은 씨티그룹 전망대로 t당 1만 달러까지 뛰게 될까요. 이제 ‘값싼 초콜릿 시대’는 저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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