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에겐 생소하지만 검찰 등 수사기관 종사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통신자료와 통신사실확인자료라는 것입니다.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우선 통신자료는 가입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거주지 등 개인정보입니다. 통신사실확인자료는 흔히들 말하는 통화내역입니다. 통신자료는 법원의 영장 없이 검사 내부 결재만으로 검찰이 이동통신사에 요구합니다. 반면 통신사실확인자료는 영장을 발부받아야 통화내역 추적이 가능합니다.
2021년 공수처가 통신자료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이성윤 당시 서울고검장을 이른바 ‘황제 조사’를 받은 경위를 조사한다면서 언론인과, 야당 정치인, 시민단체 대표, 변호사 등 수백 명의 통신자료를 광범위하게 조회한 겁니다.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 부부와 그 지인들까지 통화자료가 폭넓게 조회되자 윤 후보는 “미친 사람들 아니냐”는 말도 했었습니다.
수사기관이 법원의 영장 없이 통신자료를 확인하는 것은 불법은 아닙니다. 그리고 당사자에게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을 통보하지 않아도 당시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존 검찰 수사를 성찰하는 기관이 되겠다면서 새로 만들어진 공수처의 이 같은 행태에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국민들이 이동통신사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공수처가 조회했는지 확인하는 릴레이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듬해 7월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조회한 뒤 당사자에게 통보하는 규정이 없는 것이 위헌이라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그 후속조치로 지난해 12월 국회가 법 개정에 나섰습니다. 여야 의원들은 수사기관이 통신기록 조회를 하면 30일 이내에 당사자에게 통보하도록 법을 바꿨습니다. 통신기록이라는 용어도, 통신사실확인자료와 헷갈리지 않게 통신이용자정보로 바꿨습니다. 증거인멸이나 도주 등의 우려가 있는 경우 수사기관은 30일이 지나고 나서도, 예외적으로 3개월씩 2번, 6개월 한도에서 통보를 유예할 수 있는 규정도 생겼습니다. 통신조회 시점으로부터 따지면 7개월 이내에는 수사기관의 통신기록 조회 여부가 당사자에게 통보되는 겁니다.
이런 내용의 개정 법안이 시행된 것이 올해 1월 1일부터입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 1부가 야당 의원 10여 명과 보좌진, 언론인 등에게 통신기록 조회를 한 사실이 최근 일제히 통보됐습니다. 당시 반부패1부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대장동 사업자 김만배 씨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산저축은행 수사 관련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대선 개입 여론조작 의혹을 수사 중이었습니다. 검찰이 법 시행 직후인 올 1월 4일경 통신기록을 조회했는데, 현행법이 규정한 7개월이 지나기 직전에야 당사자에게 통보된 겁니다.
검찰은 “적법한 절차”라고 강조했습니다. 수사의 초동 단계에서 피의자와 통화한 당사자의 기본 정보를 확인하는 게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작업은 필요 최소한의 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개정법의 입법 취지는, 수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30일 이내에 원칙적으로 통보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에 통신자료 조회 7개월 뒤에 통보를 받은 사람들을 보면 피의자도 아니고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적잖습니다. 개정법은 기존 법보다 진일보한 측면은 있겠지만 여전히 수사기관의 재량권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당사자는 통신사가 무슨 명목으로 수사기관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했는지, 그 자료가 언제까지 남아있는지 불안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법 여부를 떠나 그런 관점에서 이런 문제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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