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포비아」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 보면 외국인기피증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더 정확하게는 「악의가 없는 상대방을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경계하는 심리상태」를 일컫는다.
이는 자기과보호(過保護)의식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고 지나친 열등의식에 기인하기도 한다. 나의 약점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과는 그럭저럭 공존할 수 있는데 생소한 사람이 접근해오면 나는 반드시 피해를 볼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세계화시대에 살면서도 우리는 아직도 제노포비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대표적인 예로 외국인투자 기피증을 들 수 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외국의 유망기업을 유치하여 신종산업을 일으키고 경쟁력을 제고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반해 우리는 아직도 외국인투자를 기피하는 실정이다.
기피 이유를 들춰보면 과보호의식과 열등의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본다. 즉 우리 기업은 아직 자생능력이 약하므로 외국기업과 경쟁할 채비가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나 국민이 모두 나서서 외국의 경쟁력이 강한 기업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은 이같은 우리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우선 외국기업들은 한국을 그리 대단한 투자대상국으로 보지 않고 있다. 실적으로 볼 때 외국인의 대한(對韓)투자액수가 우리 경쟁상대국을 향한 투자액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은 물론 태국 수준만도 못하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는 유럽 여러 나라보다도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최근 몇년동안의 추세를 봐도 우리나라가 매력이 대단한 투자대상국이 아님은 쉽게 나타난다. 지난 91년 이후 외국인의 직접투자는 한동안 감소한 적도 있고 늘어도 다른 나라들같이 큰 폭으로 늘지않고 있다.
한국경제의 활력과 역동성을 인정하면서도 왜 외국인들은 대한투자를 꺼릴까.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한국이 기업하기에 여간 불편한 나라가 아니라는 평가가 나와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인용하는 스위스 IMD연구원의 보고서에 보면 96년도 우리나라의 투자매력이 비교대상 45개국중 28위로 나타나있다.
무엇이 그리도 불편할까. 이들 보고서를 보면 잦은 노사분쟁, 높은 인건비, 언어 불통, 불친절, 이상한 자존심, 높은 이직률 등등 대개는 인적 요인에 속하는 것들이다. 물론 정부의 과도한 규제, 모호한 법규, 비합리적 금융 등을 꼽기도 하지만 이것도 따지고 보면 물적 요인이라기보다는 인적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인적 장애요인이 존재하는 한 외국인기업들이 물밀듯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업하기 편한 나라가 얼마든지 있는데 구태여 동북아 끝의 한반도를 찾아 들어올 까닭이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적 장애를 쳐놓고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우리 기업을 보호하며 국제경쟁을 피하면서 얼마나 우리 경제가 지탱할 수 있는가이다. 무한경쟁시대에 대비하여 모든 나라들이 외국의 유망기업을 유치하며 경제전쟁에 대비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묘한 열등의식과 배타적 이기주의 때문에 귀중한 기회를 놓쳐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문(自問)해볼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같은 중요한 기관에서 초대를 하는데도 아직은 못 들어가겠다고 버티는 한국이라면 21세기초에 우리의 자화상은 뻔하지 않을까. 20세기초의 그것이나 다를게 무엇인지 적이 염려된다.
유 장 희(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