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층 아파트 계획 고치라

  • 입력 1996년 11월 17일 20시 19분


저층 아파트를 헐고 그 자리에 초고층 아파트의 재건축을 허가하기로 한 서울시 결정은 한마디로 분별이 없다. 수도 서울을 어떤 모습으로 가꾸어갈 것인지 먼 장래를 내다본 계획성과 방향감이 없다. 뿐만 아니라 도시계획의 종합성과 균형감을 무시한 채 주민요구와 건설업자 이익에 너무 치중한 느낌이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시는 시내버스행정과 관련해 버스업자와의 깊은 유착이 드러나 신뢰를 크게 잃은 시점이다. 저밀도아파트지구의 재개발을 둘러싸고 추호라도 잡음이 일거나 행정의 신뢰를 또 잃게 되어서는 곤란하다. 서울시 5개지구 저층아파트의 재건축허가 결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무리해 보이는 부분은 용적률(容積率)의 지나친 확대다. 잠실 반포 등 5개지구 저층 아파트의 기존 용적률은 대지면적의 80%부터 많은 곳이 110%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것이 한꺼번에 285%로 3배 가까이 늘어나게 되어 있다. 땅의 이용도를 높이고 주민의 주거공간을 넓히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전체 가구수가 지금의 5만정도에서 7만가구로 불어나고 25층까지의 초고층 아파트를 대량으로, 그것도 한꺼번에 짓는 등 고밀집중이 일어날 경우 매우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 그렇게 강남의 도시집중을 가속화할 때 도시미관(都市美觀)은 제쳐놓더라도 교통혼잡이 큰일이다. 도대체 서울시는 교통혼잡과 도시미관 등의 문제를 염두에나 두고 있는지 의문이다. 도시를 재개발할 때마다 용적률을 크게 올릴 경우 가까운 장래에 서울은 괴물의 모습이 되고 말 것이다. 7만가구분의 아파트단지라면 그 규모가 서울 도심에 신도시 하나를 또 새로 짓는 것과 같다. 그에 따르는 건설인력과 자재난 및 건설기간 중 서울 전지역의 교통혼잡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선 교통의 원활한 소통 계획이라도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반시설정비는 물론 인력과 자재의 수급계획 등 종합여건을 먼저 마련한 뒤 재건축계획을 내놓았어야 순서가 맞는다. 재건축을 하는 경우라도 마땅히 지역별로 시차를 크게 두어 일을 추진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5만가구분의 아파트를 한꺼번에 헌다면 5만가구가 세들어 살 집이 당장 필요하다. 서울의 주택보급상태에서 그만한 전세물량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5개아파트지구 재개발계획이 발표되자 이미 전세금이 크게 오르고 전세물량이 달리고 있다. 재건축이 완료되기까지 5년간 전세금파동이 일 것은 분명하다. 또한 전세금상승은 집값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같은 문제는 결국 사회전체와 중앙정부의 부담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서울시 행정의 돌출성이 국가부담으로 전가되어서는 곤란하다. 서울시의 저층 아파트 재건축안은 도시계획의 장기비전과 종합성을 결여한 문제가 많은 계획이다. 도시계획의 기본 방향부터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종합여건을 먼저 정비한 뒤 재개발계획을 무리 없게 추진해야 한다. 서울은 이 나라의 얼굴이다. 시민편의와 도시미관은 물론 쾌적성과 균형감을 조화시키는 거시적인 도시정비 차원에서 저층 아파트 재개발계획을 다시 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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