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 새지평]아버지의 자리

  • 입력 1996년 11월 26일 20시 03분


어깨가 축 늘어진 아버지들이 늘고 있다. 바쁘게 달려왔건만 잃은 것은 청춘이요, 얻은 것은 고독 뿐이라고 생각하는 허기진 아버지들이 늘고 있다. 집을 마련하고 교육을 시키느라 우리의 아버지들은 겨우 아침밥상에서나 가족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밥상에서조차 아버지들은 식사를 하는 건지, 에너지를 공급받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서둘렀고 그리고 바삐 일터로 나갔다. 처자식을 위해 뼈빠지게 일했건만 처자식과 함께 했던 시간은 별로 없었던 우리의 아버지들. ▼ 「脫가부장 문화」의 정착 ▼ 그 아버지들이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대견해서 말을 걸어본다. 그 때 가장 빈번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예』 『아니오』 『아빠는 몰라도 돼요』다. 아버지들은 아버지 없이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짜여진 가정의 문화적 질서에 당황한다. 「아, 긴 세월 속에서 가장으로서의 나의 의미는 돈벌어오는 기계였나」. 가장의 권위가 사라진 가정에서 아버지의 고독이 솟아난다. 「내 자리는 어디인가」를 묻고싶은 막막한 아버지들. 아버지의 자리는 어디인가. 『이건 아버지의 의자다』며 아버지의 의자엔 자식들을 앉히지 않는 어머니는 이제 없다. 제일 존경하는 인물란에 「아버지」라고 쓰면서 가정의 얼굴로서의 아버지의 한마디 한마디를 가슴에 새기는 자식들도 드물다. 여태까지 가정은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를 축으로 도는 경제공동체였다. 남자만이 돈을 벌 수 있었을 때 가장의 기를 세우는 일은 가족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남자들의 노동력만을 중요한 생산력으로 치는 시대는 지났다. 육체적인 힘보다도 오히려 여성적 감수성이 힘이 되는 정보사회의 문턱에 와있지 않나. 30,40대 여성의 58%가 돈을 벌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가정은 더이상 남자의 경제력에 기대선 경제공동체가 아니다. 이때 사회는 특별히 남자의 기를 세워줘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사실 한 쪽의 기를 세워줬다는 건 누군가 기죽고 지내는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막강했던 가장의 자리를 빼앗아 간 것은 아내도 자식들도 아니다. 그것은 더이상 가부장제를 요구하지 않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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