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원론 시간에 중국영화 「서초패왕」(西楚覇王)을 감상했다. 영화에서 항우는 의리를 존중하고 우미인이라는 한 여인에게 모든 사랑을 바치는 인간적인 사람으로 묘사돼 있다.
반면 유방은 의리를 배반하고 여치라는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자들을 거느리는 부도덕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인간성-합리성의 상징▼
유방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하던 항우는 백성들이 전쟁으로 도탄에 빠져있다는 부하의 간언을 듣고 결단을 내린다.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는데내가 천하를 통일해 무엇하랴. 천하를 둘로 갈라 유방과 나누어 다스리면서 사이좋게 지내리라』 그리고는 유방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이제는 싸움을 끝내고 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내가, 서쪽은 당신이 다스려 평화롭게 살아갑시다』 연패하고 있던 유방은 꿇어 엎드려 고마움을 표하고 이후 두 사람은 피의 맹세를 한후 헤어진다. 그러나 유방은 항우의 군대가 모처럼 평화를 즐기고 있는 틈을타 기습, 섬멸하고 만다. 항우와 그의 부하들은 모두 자결하게 된다.
『항우와 유방중 누가 더 바람직한 경영자인가』
영화감상 직후에 있은 거수투표에서는 7대3 정도의 비율로 항우가 더 바람직한 경영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도 학생들은 항우를 인간적이고 의리가 있으며 많은 부하가 믿고 따르는 지도자로 평가했다. 특히 상황이 나빠졌을 때도 부하들이 항복하지 않고 항우를 따라 전원 목숨을 버린 사실에 감동했다. 그러한 부하가 있다면 지도자로서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으리라는 의견을 내놓는 학생도 많았다. 그러나 토론이 무르익어 가면서 유방이 더 훌륭한 경영자가 아니냐 하는 의견이 고개를 들었다. 『경영자는 자기 부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책임이 있다. 전쟁에서 패해 자신은 물론 믿고 따르던 부하들까지 모두 죽음으로 이끈 사람을 어떻게 훌륭한 경영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항우는 범증이라는 참모가 유방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독선에 빠져 의리만을 내세웠으니 바람직한 경영자라고 할 수 없다. 경영자라면 주위 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후에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유방이라고 해서 약속을 지키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보다 큰 뜻을 위해 보통 사람으로서의 가치 기준을 버린 것이다. 자기 감정을 자제하고 부하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가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유방이야말로 진정한 경영자다. 유방은 약속을 지키지는 않았지만 결국 천하를 통일해 자신의 이상을 펼친다는 꿈을 이루었다. 전쟁의 목표는 승리다』하는 반론이 나왔다.
이에 세번째 의견이 나왔다. 『결국 항우나 유방이나 나름대로 특성을 지닌 경영자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고 기업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에 따라 항우같은 경영자가 필요할 수도 있고 유방같은 경영자가 적합할 수도 있다. 예컨대 창업기에는 항우같이 강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 기업을 이끌어 나가야 하지만 규모가 커지고 경영내용이 복잡해지면 유방과 같은 관리능력을 지닌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적절한 조화」가 능력▼
한 학생의 의견으로 토론은 맺어졌다. 『유방이나 항우는 서로 다른 인물이지만 결국 모든 경영자가 지니고 있는 성격의 이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영자에게는 항우와 유방의 성품이 둘다 있되 필요에 따라 둘중 한 사람의 능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경영자는 항우의 인간적인 면과 유방의 합리적인 면을 겸비하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자질들을 갖추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경영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닐까』
조 동 성<서울대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