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을때 칠순의 친정 부모님이 걱정돼 전화를 걸었다.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핑계가 많은 탓일게다. 어설픈 맞벌이 주부노릇에 그나마 친정은 뒷전이므로….
일상적 대화끝에 어머니는 불쑥 『친한 친구가 이달중 강원도 산골에 혼자 살러 내려간다』고 말하셨다. 자식들 다 잘 키워 분가시킨 그분은 늙어서 자식에게 폐끼치느니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노인시설에 머물기로 결심하셨다고 한다. 보름전 막내아들을 결혼시켜 살림을 낸 어머니는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셨나보다.
이런 얘기를 나눈뒤 월요일자 신문에서 노인만 사는 집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읽으니 씁쓸했다. 지난 20년새 장남과 동거하는 60세이상 부부의 비율이 4분의 1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노인단독가구도 75년 7.0%에서 현재는 과반수가 넘는다고 한다.
노인들은 자식과 떨어져사는 이유에 대해 「편하기때문」과 「자식들이 불편해 할까봐」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다른 말같지만 뒤집어보면 같은 얘기다. 함께 살면서 정나고 험한 꼴 보이고 싶지않다는 뜻일테니까. 부모는 열자식을 거느려도 열 자식은 부모를 챙기지 못한다는 말은 속담이 아니라 이제 가혹한 현실이 돼 버린 셈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이 문제에 무관심하다. 아직 늙어보지 않은 우리들은 「자식한테 기댈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큰소리치지만 노후준비는 경제적 대비만을 의미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어떤 눈밝은 자녀들은 부모마음을 헤아려 형편이 가능하면 같은 아파트단지에 둥지를 틀고 모여살기도 한다.
물론 요즘 세상에 함께 모시고 사는 것만이 만능은 아니며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부모로부터 받을 것은 모두 받으면서 줄 것은 아끼는 모습이 신세대의 초상일 수는 없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부모봉양은 못하더라도 황혼의 시간을 훈훈하게 채워드리는 일,그게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또 하나의 나이테를 완성하는 시간이다. 다시 세모를 맞으며 할머니가 가끔씩 중얼거리시던 말을 떠올려본다. 『너희두 한번 늙어봐라』
고 미 석<문화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