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는 정신보다 솔직하다. 임재선사라는 스님은 신도들이 어려운 질문을 하면 대답대신 주먹으로 얼굴을 한방씩 때려주었다고 한다. 정신보다는 육체적으로 느끼라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라면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김용옥의 「여자란 무엇인가」,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등도 서로 통한다. 느낌에 솔직하고자 하는 저자들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유선방송심의를 하다보면 육체적으로 솔직한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쓸데없는 부분에서 성행위와 피가 튀는 장면이 난무한다. 한편 미국 의회는 이미 1970년에 외설적인 작품의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결론짓고 외설을 막기보다는 풀어놓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 대한 사전심의가 폐지되고 다른 분야에 대한 심의도 완화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문제는 청소년에 대한 영향이다. 그들에게 외설이나 폭력물은 하얀 도화지에 물감을 뿌리는 것과 같다. 현재 방송은 성인물을 늦은 시간대에 편성하거나 성인물이라는 표시를 해주고는 있으나 그것은 청소년의 시청을 차단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유혹할 뿐이다. 「청소년에게 유해한 프로그램이니 보지 마십시오」라는 것은 사실 안방에서는 웃기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애써 써놓은 작품을 폐기처분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을 외설과 폭력물로부터 차단시키는 일이다.
그것은 남자성기를 강조한 신문광고를 싣지 않는 일이고, 방송심의를 철저히 하는 일이고, 서점에 성인코너를 만드는 일이고, 가판대에서 야한 잡지를 없애는 일이며, 종로에 성인영화관을 만드는 일이다.
이 동 신<경희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