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 새지평]내 얼굴만 바라보는 아내?

  • 입력 1996년 12월 17일 20시 00분


올 세밑은 어깨 처진 남성들의 한숨 때문에 유난히 더 추울 것 같다. 반생을 오로지 「회사 인간」으로 살아온 남성들이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에 평생을 보장해 주리라 믿었던 일터로부터 하루 아침에 밀려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니 그들이 뿜어내는 한숨의 농도가 얼마나 짙을지 쉽게 헤아려진다. ▼ 名退 남편들의 한숨 ▼ 그들은 거의 예외없이 지독히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으며 수업료 마련 때마다 가슴 죈 끝에 어렵사리 졸업장을 받았으며 처음 들어갔을 때 별로 탄탄하지 않았던 작은 회사를 집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키워 온 세대다. 그리고 그들은 부모를 부양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는 마지막 세대이며 자신의 노후를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첫세대다. 이제 자신의 전세계라고 믿어 왔던 회사로부터 명예퇴직이란 이름으로 배반을 당한 그들은 자신의 삶 전체가 불명예스러워졌다는 패배감과 아울러 갑자기 불안해진 미래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가는 자신이 초라하게만 여겨질 것이다. 물론 「위기는 기회다」라는 신조로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새로운 삶을 기획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지만 퇴직을 하고서도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차마 말을 할 수 없어서」 출근하는 것처럼 집을 나서는 가장도 꽤 있다고 한다. 요즘 매스컴에서 유행처럼 보도하는 명예퇴직자들에 대한 기사나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해온다. 이 말처럼 이 땅에서 남자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실감나다 못해 과장되게 전해 주는 표현도 또 없을 것이지만 반면에 이 말처럼 멀쩡한 여성들을 완전한 무능력자로 몰아가는 표현도 또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10여년 이상을 함께 살아왔을 아내에게 속시원히 털어놓고 상의하지 못하는 까닭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거나 사랑하는 아내에게까지 무능력자로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라는 둘중의 하나라고 짐작된다. 그렇다면 아내는 성혼선언문에 쓰인대로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함께 나누는 동반자가 아니라 늘 보호와 경계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존재라는 말인가. 슬프게도 이 세대의 남성들은 아내를 그렇게 대하는데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돈은 내가 벌어 올 테니 당신은 아무 걱정 말고 집에서 살림이나 잘하라는 것이 중년세대의 전형적인 부부상이었다. 그리고 물론 이 사회는 최근까지 여성이 마음놓고 바깥일을 할 수 있게끔 최소한의 뒷받침에도 인색하기만 했다. ▼ 여성은 무능력자인가 ▼ 해방 후 제대로 교육받은 첫세대 여성의 대부분은 이렇게 살아왔고 이제 늘 기대기만 했던 남편이 휘청거리는데도 그저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아니면 냉혹한 자본주의의 논리를 탓하며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다. 앞으로 다운사이징이 본격화되면 명예퇴직 연령이 훨씬 낮아지게 되고 그 규모도 더욱 커지리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그래서 요즘 발빠른 30대들은 벌써부터 퇴직에 대한 준비를 꼼꼼하게 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물론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더불어. 거창하게 남녀평등의 이념을 내세울 필요도 없이 이제 남편의 얼굴만 바라보고 사는 아내의 시대는 어쩔 수 없이 끝나가고 있나 보다. 朴 惠 蘭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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