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지켜야 할 기본 가치관이 올바로 서야 사회가 건강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많이 치부한 사람이나 높은 권좌에 앉은 사람들에게 무조건 큰 가치를 부여하려는 풍조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이 치부한 과정이나 권력을 장악한 배경을 깊이 살펴보지도 않고 무조건 존중하려는 이같은 풍조는 분명 잘못된 가치관이다.
목적만을 정당시하려는 이런 가치관은 결국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릇된 사회풍조를 부추긴다.
예를 들어 국민건강에 해가 되든말든 아랑곳않고 부정식품을 불법으로 제조해 유통시키는 파렴치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선거법은 있거나 말거나 갖은 술수와 중상모략을 통해서라도 당선되려는 입후보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들마저 구시대의 그릇된 유산을 버리지 못하고 편법을 자행하며 이를 정당시하고 있다. 세밑인 12월26일 먼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6시. 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개정안 등 11개 법안을 7분 동안에 기습처리해 국민을 놀라게 했다. 통과된 법안 하나하나가 실로 국민생활과 직결된 중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충분한 심의과정도 없이 무리하게 날치기 통과시켰으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편법 아닌가.
김영삼대통령은 신한국당을 창당하면서 그야말로 새로운 이상국가를 표방하는 참신한 정당임을 강조했다. 구시대적 작태와 낡고 모순된 한국병을 과감히 고치겠다며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중대법안의 여당단독 기습처리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을 크게 실망시켰다.
물론 대통령 임기내에 고질적인 노사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국제경쟁력 있는 노사관계를 정립하고 싶어하는 줄 안다. 또 심각한 남북한 대치상황 속에서 보다 현실적인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미래를 위한 강력한 의지의 발로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목적이 좋다고 해도 추진하는 과정이 순리에 벗어나서는 안된다. 잘못된 과정의 부작용으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한 경우를 우리는 지난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해 왔다. 정부 여당은 남은 대통령 임기동안 대도(大道)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유종의 미를 거두는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조 인 형<강원대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