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뭍으로 온 황소가 주는 생명의 교훈

  • 입력 1997년 1월 19일 19시 43분


▼말이 섬이지 이곳은 웬만한 행정구역 지도에도 이름조차 오르지 않았다. 한강 하류 경기 김포군의 최북단 유도(留島).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동서 8백m, 남북 4백m 크기의 이 작은 무인도에는 천연기념물 저어새를 비롯, 재갈매기 백로 왜가리 등 철새 수천마리가 깃들여 뭍의 주민들은 「흰섬」이라고도 불렀다. 무성한 갈대와 새뿐인 섬에 언제부터인지 황소 두마리가 살고 있는 것을 주민들이 발견한 건 지난해 가을이었다 ▼여름 홍수 때 상류지역, 북한에서 떠내려오던 소가 겨우 섬에 기어오른 것이라고 주민들은 생각했다. 통제구역이자 지뢰밭인 까닭에 섬에 접근할 수 없는 주민들이 먼 발치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한마리는 얼마 안가 자취를 감추었다. 먹이가 없어 굶어 죽은 게 틀림없었다. 남은 한마리마저 하루가 다르게 여위어가고 비실비실하는 품이 곧 쓰러질 것 같았다. 주민들은 그 한마리만은 어떻게든 살려내야 한다고 결의했다 ▼정초 김포군은 남한에서 여물을 보내고 북한이 암소 한마리를 보내 자연스럽게 방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 경우 초지가 사라져 곤충이 자취를 감추는 등 자연생태계가 파괴돼 새들이 서식처를 옮길지 모른다고 환경부가 경고했다. 또 소들이 지뢰를 밟아 폭사할 수도 있었다. 결국 소도 살고 자연도 살리기 위해 지난 17일 해병부대원들이 유도 황소를 뭍으로 데려오는 긴급작전을 펴 성공했다 ▼소의 해에 남북대치의 상징적인 지역에서 소와 자연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 작은 일 한가지에서 큰 일이 되어감을 보듯 올해 남북문제와 환경문제 그리고 생명존중의 기운이 이처럼 뻗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뭍으로 온 황소에는 「평화의 소」란 이름이 주어졌다. 소 한마리의 구출작전에서 남북의 평화, 자연과 생명의 지킴을 새삼스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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