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노트]김세원/빈 둥지의 酒婦

  • 입력 1997년 2월 11일 20시 17분


기자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으레 술이 따르다보니 맥주 한 두 잔 정도는 자주 입에 대게 된다. 여성에게도 음주단속을 할까 싶어 저녁 회식후에 차를 끌고 귀가하다가 몇 번 「위기」를 모면하고부터는 아예 차를 놓고 다닌다. 음주단속의 「남녀평등」이 이뤄질 정도로 여성의 음주는 어느새 사회적 추세가 됐다. 여성신입사원들도 자신의 신상명세에 당당하게 「주량은 소주 한 두 병 정도」라고 밝히고 업무관계로 알게 된 사이라면 남녀를 불문하고 『언제 술 한 잔 하십시다』가 인사치레가 됐다. 20,30대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일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갤럽이 전국의 20대 이상 남녀 1천5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음주습관 여론조사에 따르면 남성음주자는 92년의 80.1%에서 83.3%로 3%포인트 늘어난 반면 여성음주자는 26.1%에서 61.2%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통계청의 보건부문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여성의 60.3%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술을 마시고 30.5%는 일, 이주일에 한 번, 7.3%는 일주일에 서너번 술을 마시고 있다. 여성의 음주상대는 친구나 동창이 제일 많고(35.5%) 다음이 형제 자매 등 가족(31.9%) 배우자(20.9%) 직장동료(3.0%)의 순. 혼자 마신다는 사람도 3%나 된다. 주위의 권유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술 그 자체를 즐기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점도 예전과는 달라진 풍속. 여대생이나 취업여성은 물론 전업주부들의 친목모임이나 동창회에서도 반주 한 잔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정주부의 음주율이 92년 24.4%에서 59.6%로 5년사이에 두 배 이상 늘어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긴 30, 40대 주부중에는 전업주부 스트레스, 이른바 빈 둥지증후군을 술에 의지해 잊어보려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남편과 아이들이 아침에 썰물처럼 몰려나간 후 「빈 둥지」를 지키며 마주하게 되는 외로움을 술로 달랜다. 술을 즐기는 여자는 곧 직업여성이라는 편견도, 음주를 통해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어설픈 페미니즘도 모두 극복해야 한다. 술 권하는 사회니까 말이다. 김세원<사회1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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