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 새지평]김철규/역사를 바로세우는 길

  • 입력 1997년 3월 18일 19시 45분


독일의 생태학자 고르(Gorz)는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많을수록 좋다」라는 경제적 합리성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얼핏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보이는 팽창적 합리성이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적으로나 생태적으로 오히려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서구 사회를 겨냥한 고르의 비판은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60년대 이후 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인들을 지배해온 핵심 가치는 「더 많이, 더 빨리」였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비합리적인 언술이 군(軍) 관(官) 기업 그리고 개개인의 일상생활에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안될 수도 있다거나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려 하면 그 사람은 무능력한 사람으로 간주되게 마련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고, 절차를 따지고, 원칙을 세울 수가 없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 獨학자 고르의 지적 ▼ 각종 경제관련 지표로 볼 때 한국의 경제가 큰 위기에 처해 있음은 분명하다. 중요한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정치권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 활동과 정치 과정 곳곳에서 일상화한 부조리와 부패의 고리다. 원칙도 없고, 원칙을 준수하는 사람들도 없다. 우리의 갈 길을 잡아줄 나침반이 사라져버렸다는 막막함을 갖게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윤리가 필요한 이 때, 그래도 우리가 기대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80년대를 통해 성장한 시민사회라고 생각된다. 87년의 민주화 투쟁, 최근 노동법 및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의 부당성에 대해 보여준 풀뿌리적 문제 제기, 그리고 활발한 자생적 시민운동단체 등은 시민 혹은 시민사회야말로 장기적으로 한국의 정치와 경제를 바로세울 수 있는 힘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물론 이러한 기대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시민사회의 성숙과정이 요구된다. 몇 가지의 중요한 변화들이 개인과 시민사회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그 첫째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확대다. 가족 학교 등 기초적인 조직에서부터 직장 정당 의회에 이르기까지 특정 권위와 권력에 제한되지 않는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가능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진정으로 들을 수 있고, 의사소통에서 배제된 구성원에 대한 배려까지 할 수 있는 민주적 시민 훈련이 필요하다. ▼ 시민사회가 유일한 대안 ▼ 둘째는 현상을 보는 장기적인 안목의 습득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시간에 의해 제한받지만 동시에 시간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다. 예컨대 다음세대의 복지를 고려에 넣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개개인의 단기 이익에만 집착하는 경제적 합리성을 극복할 수 있다. 셋째는 거시적인 관점을 배우는 일이다. 자기 자신의 지위 입장 행위 등을 사회 전체 맥락속에 놓아볼 수 있는 객관적 안목이 중요하다. 재벌 2세는 자신의 부유함이 재벌 아버지를 둔 「운(運)」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 생각이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의 관계를 객관화한다면 「내 돈 내가 쓰는데 누가 뭐래」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적이고 성숙한 시민사회가 자신들의 일상 생활을 변화시키고,더 나아가 경제와 정치의 불합리하고 부패한 운용에 제동을 걸고 영향력을 행사할 때 우리 역사가 바로설 수 있다. 역사는 누가 세워주는 것이 아니다. 김철규 <고려대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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