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호주출장을 갔을 때 묵었던 시드니의 킹스크로스의 거리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한글 간판과 영어 간판이 뒤섞여 있는 면세점과 나이트클럽 술집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며 캐피털호텔이란 한국인 소유의 대형호텔이 있는 것마저도 영락없는 서울의 이태원거리였다.
저녁에 호텔 3층에 있는 한국식 여자사우나에 들렀을 때 다시 한번 놀랐다. 앉은뱅이 의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열심히 때를 밀거나 눈을 지그시 감고 누운 채 때밀이서비스를 받고 있는 여성의 절반 이상이 놀랍게도 금발의 서양여인들이었다.
교포들 얘기를 들어보니 93년말 개장한 이 사우나는 한국 특유의 때미는 목욕문화를 호주인들에게 전파하는 곳으로 현지 언론들에 여러 차례 소개가 됐다고 한다. 현지 신문을 찾아보니 얼마전에도 일요판 특집면에 피로회복과 피부미용에 만점인 「신비의 동양 목욕술」이라는 제목으로 호주 여기자의 사우나 탐방기가 실려 있었다. 때미는 동작을 「마사지사가 샌드페이퍼처럼 꺼칠꺼칠한 벙어리장갑을 끼고 전신의 살갗이 얼얼할 정도로 벅벅 문지른다」고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
세계에서 때를 미는 목욕문화를 가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깨끗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일본인이지만 그들에겐 이런 목욕법이 없다. 재일교포를 통해 때밀이 목욕법이 소개되면서 붐이 일어 몇백만달러어치의 때밀이수건을 수입하고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는 한국행 때밀이관광이 큰 인기라고 한다.
때밀이 목욕법이 한국인의 청결이미지를 외국에 전파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현금을 가득 채우고 표면만 사과로 덮은 「특별한 사과상자」도 심심찮게 외국언론에서 회자되고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사기성 상품을 가리키는 「코리안 애플박스」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몸만 깨끗이 씻었지 정작 사회는 비리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이상한 나라」로 비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러고 보니 정작 때밀이수건이 필요한 것은 외국인이 아니라 「코리안 애플박스」란 단어를 세계에 퍼뜨린 「높으신 양반」들인 것 같다. 때밀이수건을 수출만 할 게 아니라 국회와 관가에 먼저 보내야 하지 않을까.
김세원<사회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