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사람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다. 남자와 여자이면 더욱 좋다. 이들이 가깝고도 오래됐으며 비공식적인 사이인지 아닌지를 알아맞히는 세가지 관찰법이 있다.
첫째, 수다를 떠는가, 아니면 묵묵히 밥만 먹는가.
둘째, 이름을 부르거나 「당신」과 같은 2인칭을 쓰는가, 생략하는가.
셋째, 서로를 쳐다보는가, 대판 싸운 사람처럼 외면하는가.
첫번째 정답.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시시콜콜 얘기하는 사이라면 필경 「신생 관계」다. 「맨 워칭」을 쓴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에 따르면 오래된 사이, 특히 나이든 부부사이일수록 『다 내 맘 같겠거니』 『별로 궁금한 것도 없구만』하며 묵묵히 있는 경우가 많다.
두번째 정답. 2인칭을 생략할수록 오래된 사이일 가능성이 짙다. 상대방을 굳이 부르지 않는 것은 안불러도 피차 잘 알뿐더러 상대방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라는 풀이다.
세번째 정답. 상대방이 있는 듯 없는 듯,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구는 사이가 오래된 커플이다. 이는 연극연출가 오태석씨의 지론이기도 한데, 한국사람이 서로 정색을 한채 이름을 부르거나 마주보는 경우는 따질 것이 있는 경우를 빼놓고는 거의 없다는 얘기다.
이 얘기만 들어보면 소 닭보듯 하는 오래된 사이가 그래서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헷갈린다. 좋게 말하면 물같이 덤덤한 경지로 승화됐다는 것이고, 독하게 말하면 「있을땐 지겹고 없으면 아쉬운」 관계로 전락했다는 말같다.
이가운데 내게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오래된 사이의 수다결핍증이다. 특히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이에서 그러한데 수다가 얼마나 떠벌리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며 심리치료법인가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요즘 늘어나는 노년이혼도 대부분 평생을 「아뭇소리」없이 살아온 할머니들의 반란이라고 한다. 소설 「아버지」의 주인공이 암 발병조차 가족들에게 말 못하는 것 역시 남자들의 치명적인 수다결핍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싶다.
독설가로 유명한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수다가 세상에서 두번째로 나쁜 악』이라고 했다. 가장 나쁜 악은 자신에 대해서든 남에 대해서든 아뭇소리도 않는 것이라고 했다나.
김순덕<문화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