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오십을 넘긴 어머니. 어느날 대학생 아들을 방으로 불렀다. 단둘이 마주 앉은 자리. 잠시 침묵을 지키다 아들을 향해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나이들어 혹 내가 치매에 걸리거든 꼭 전문요양시설에 보내도록 해. 아무런 죄책감 느낄 필요없어. 너희를 가슴아프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나도 모르는 새 하는 것이니 그리 알고 괘념치 말고…. 오직 내 부탁은 엄마 얘기 늘 명심해두었다가 그대로 지켜달라는 거야』
지난 어버이날, 글 쓰는 친구로부터 문단 선배의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 가슴 한쪽이 아파왔다. 이런 게 부모 마음이구나.
「늙어가면서 여기저기 몸 아픈 것도 자식앞에서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어른들. 몸 망가지는 것뿐 아니라 정신마저 놓아버리는데 대한 부모세대의 두려움은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일지. 그 근심뒤에는 온전치 못한 자신을 떠맡아야 할 자식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숨어있으리라.
얼마전 만난 치매전문가는 말했다. 『에이즈만 해도 막연히 「남의 일」처럼 여길 수 있겠지만 치매는 모두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인생의 커다란 파도같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사회의 도움없이 가족만이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죠』 말기에 이르면 밥을 씹고 삼키는 것마저 잊는다고 했던가. 황폐화해가는 인격을 바라보며 추억마저 해체당하는 듯한 고통의 시간. 살아계신데도,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리는 절망은 어디에 비할 것인가.
하지만 어떤 획기적인 치료법이 개발된다 해도 「사랑의 이름으로」 감당해야 할 몫은 결코 줄지 않을 거라는 그의 얘기는 긴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건 사람이지 약이 아닐 것이므로.
복제니 뭐니 오만방자한 인류에 신은 결코 방심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다. 부모 자식간에도 네것내것 선을 그어놓고 사는게 합리적이라고 치부하는 이 세상. 억지로나마 인간다움의 근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고 내리는 가혹한 시련일까.
나 어릴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며 키우시느라 손발 닳아진 이들. 때론 잊고 살아도, 처음 우린 그들과 「한몸」이었다.
고미석 <생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