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언론이 「돌리 양(羊)」선풍을 일으켰을 때 히틀러 같은 독재자를 복제할 우려가 있으니 반대한다는 여론이 일게 된 것만 해도 그런 보기 가운데 하나다. 복제인간이 실제로 출현한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가 흔히 보는 일란성 쌍생아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유전자가 똑같다고 해서 사람의 인격이나 능력 그리고 가치관까지 똑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과학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쌍둥이가 함께 대학입시를 치르면 둘다 점수가 똑같이 나올 것이라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생물학적인 경우라 해도 쌍둥이가 같이 앓게 되는 유전성 질환은 50대 5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 유전자보다 환경 요인 ▼
그러고 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히틀러 같은 복제인간이 아니라 바로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 자신이다. 히틀러는 콧수염을 길렀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 아니다. 머리 속에 든 인종주의, 이를테면 유전자가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한 히틀러의 사고(思考)와 거기에서 비롯된 유태인 학살같은 제노사이드 정책이다. 히틀러의 DNA를 복제하면 히틀러와 똑같은 인물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결과적으로 히틀러와 똑같은 유전 결정론의 동조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선택은 정반대라 해도 테레사 수녀나 김구선생을 복제하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유전자 결정론자라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귤이라 할지라도 회수(淮水)의 북쪽으로 넘어오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은 타고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위의 환경 문화 그리고 교육에 의해서 얻는다. 그러기에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하는 것은 DNA의 복제인간이 아니라 복사기처럼 대중매체에 의해 찍혀 나오는 천편일률적인 미디어 복제인간들이다. 위험성 역시 「돌리 양」보다는 그것을 센세이셔널하게 보도한 현대의 미디어쪽에 더 많다. 고등동물의 유전정보(遺傳情報)는 바다처럼 넓고 깊고 다양해서 변수가 많다. 그래서 지금은 대장균이나 바이러스처럼 단순한 생명체를 대상으로 했던 60년대 「생명의 설계도」로서의 DNA관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오히려 유전 정보보다는 미디어 정보 쪽에서 「생명의 설계도」같은 결정론적 인간관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다닌다.
▼ 미디어가 복제한 정치인 ▼
정치가의 경우만 두고 보아도 알 수 있다. 현대의 정치를 좌우하는 것은 유전정보가 아니라 미디어 정보다. 미제 상품처럼 DJ JP와 같은 영자 이니셜이 아니면 또 정반대로 봉건시대 사극 타이틀처럼 칠룡(7龍) 팔룡(8龍)으로 포장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 미디어 정보속의 대통령 후보자들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민주주의 시대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대통령 상과는 거리가 먼 것들인데도 일단 미디어에 의해 복제된 대중들은 그것을 그대로 믿고 따르고 암송하고 유통시킨다.
더더구나 눈을 뜨면 정보화시대요 둘이 모이면 돈 안드는 선거 이야기다. 자연히 기대를 걸게 되는 것은 정보 미디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시 되풀이하면 미디어는 건전한 여론만이 아니라 때로는 대중의 무지와 미신도 만들어낸다. 진짜 가짜의 다이아몬드를 식별하는 것은 대중의 여론이나 투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고도의 전문가 지식과 감식능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다.
우리가 염려하는 히틀러의 복제판 인간은 적어도 「돌리 양」을 만들어낸 고분자 생물학의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맹신과 편견으로 오도된 정보 미디어의 역기능 속에서 탄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복제된 「돌리 양」이 아니다. 무서운 것은 복제된 「돌리 대통령」인 것이다.
이어령 <이화여대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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