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의 불만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죠. 밖에 나갔다 온 남편이 현관에서부터 양말을 벗어 아무데다 던져놓는 일처럼.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집안에서 뭘 해야 하는지 눈에 안보이는 법입니다. 결국 이혼엄포끝에 남편이 양말을 벗어 제대로 빨래통에 넣기까지 4년정도 걸렸지요』
여성계에서 활동하는 한 인사가 고백한 체험담이다. 그의 남편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인사. 그의 얘기를 전해들으며 부부끼리 밀고 당기는 사연은 집집마다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살다보면 거창한 문제보다 사소한 일로 마음불편한 경우가 더 많다. 일일이 따지고 나서기도 「너무 치사해」 꾹꾹 참다보면 금이 가게 마련.
한 맞벌이주부는 남편이 화장실에만 갖다 오면 꼭 다툴 일이 생긴다. 남편이 「작은 볼 일」을 본 뒤 속뚜껑을 다시 내려놓지 않고 나온다는 얘기다. 한번은 다섯살배기 딸이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그만 변기속에 엉덩이가 빠지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대판 싸움이 터졌다.
남자라고 불만이 없을까. 「내가 언제 어디 가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왜 만나는지를 속속들이 알고 싶어한다」 「싸울 때면 옛날로 거슬러가 온갖 시시콜콜한 일까지 다 끄집어낸다」 「진짜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른다면 더이상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는 비논리적인 말을 하며 점쟁이처럼 속마음을 읽어주기를 기대한다」 등등.
사실 이 내용은 미국에서 남녀가 서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책에서 읽었던 것. 제목도 「변기속뚜껑을 내려놓지 않을 때」와 비슷했는데 한집에 살면서 겪는 동서양의 남녀 갈등이 닮아있는 게 신기했다. 거기서 남녀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결점없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참아낼 수 있는 결점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구절을 봤을 때 난 무릎을 쳤다.
그뒤 결혼안한 후배를 볼 때마다 이 말을 들려주지만 도무지 일생에 보탬이 안되는 소리를 한다는 듯 멀뚱멀뚱한 표정을 짓는다.
하기야 「신이 인간을 만드셨다. 그런데 고독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더욱 고독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반려를 만들어 주셨다」는 말의 속뜻을 아직 모를 때니 할 수 없지 뭐….
고미석<생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