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노신영/소록도에 다녀와서

  • 입력 1997년 8월 10일 20시 18분


늘 마음뿐이었던 소록도 방문의 기회를 갖게 됐다. 나환자들을 무료진료하는 서울대 치과대 의료진을 격려할 겸 지난달 15일 소록도에 다녀왔다. 롯데복지재단이 서울대 치대의 하계진료봉사활동을 돕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전국각지의 환자들에게 여름마다 무료진료를 하는 이분들께 언제나 감사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소록도 나환자들을 치료하는 교수 학생 기공사들한테서 나는 특별히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 직접 소록도를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 40년 봉사한 외국인 수녀 ▼ 국립소록도병원은 일본통치시대였던 1916년에 나환자들을 수용하는 자혜병원으로 출발, 몇차례의 개칭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이 병원은 1백38만평의 섬에 1천여명의 나환자를 수용하고 있다. 이들 중 양쪽 팔다리나 두 눈이 없는 1급 환자가 3백35명, 한쪽 팔다리나 한쪽 눈이 없는 2급 환자가 3백6명이다. 나환자 치과진료에 임한 사람들은 한국구라(救癩)봉사회 회장 劉東秀(유동수)교수가 인솔하는 40여명의 의료진이었다. 재단의 朴雙龍(박쌍룡)이사 등 간부들과 현지에 도착했을 때도 이들은 무더위 속에서 의치제작 수리 발치(拔齒) 등의 일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유교수 등은 1969년 소록도에서 치과진료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래 3천여상(床)의 틀니를 나환자들에게 끼워주었다. 「나환자들에게 먹는 낙(樂)을 찾아주자」는 봉사회의 슬로건을 묵묵히 실천해온 것이다. 특히 나환자들의 입을 벌리고 잇몸을 씻으며 틀니를 끼워주는 봉사원들의 진지한 모습에서 나는 종교적인 숙연함까지 느꼈다. 나도 저렇게 봉사할 수 있을까 하는 자문(自問)에 긍정적인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다. 나를 더욱 감동시킨 것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소록도에 와서 60세가 넘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환자들을 돌보는 데만 전념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리안 슈퇴거 수녀와 마가렛 피사레크 수녀였다. 이들의 온유한 모습과 미소, 그리고 사후(死後)에는 소록도에 묻히고 싶다는 이들의 삶에서 나는 참된 자기희생적 봉사의 고귀함을 깨달았다. 소록도에서는 마음이 무거웠던 일도 있었다. 특히 현지의 어려운 물사정이 내 마음을 짓눌렀다. 이곳에는 아직도 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빗물을 받아 두었다가 약품처리를 해서 마시거나 쓰고 있다. 넉넉지 못한 정부의 예산사정은 짐작하지만 어떻게든 수도를 놓아 이곳 분들의 불편을 덜어줄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가시지를 않는다. ▼ 수돗물없어 빗물로 생활 ▼ 공치사 같아 쑥스럽지만 재단에서는 작년 겨울 연료운반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이곳에 유조차를 기증했다. 그리고 금년에는 중환자들이 의자에 앉은 채로 오르내릴 수 있는 구급차를 선물할 생각이다. 일본통치시대에는 3명의 일본인 총독이 이곳을 다녀갔는데 해방이후에는 이곳을 찾은 국무총리가 한사람도 없다고 병원관계자들은 말했다.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금할 수 없었다. 늦게나마 이곳을 찾아 부끄러움과 미안함의 백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곧 있게 될 재단설립 3주년 기념소연(小宴)에서는 치대 의료진과 金潤一(김윤일)원장 등 병원관계자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한다. 특히 「한국의 테레사 수녀」인 마리안 수녀와 마가렛 수녀의 온유한 모습을 다시 뵙고 싶다. 노신영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전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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