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김용운/노벨상의 계절에

  • 입력 1997년 10월 12일 20시 22분


노벨상의 계절이 되었다. 한 사람의 노벨상 수상자를 뽑을 때는 해당 분야에 1백명 정도의 후보가 있다. 그래서 노벨상은 복권 당첨 만큼이나 운이 좋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요컨대 한 사람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두꺼운 수준급 학자층이 있어야 한다. 한국인이 머리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외국에서 연구중인 한국인 학자 가운데는 유망한 후보도 있다. 그러나 국내 학자의 노벨상 수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금년 한국의 인구당 대학 진학률은 세계 최고를 기록했고 아마 교육비 지출도 최고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모두 헛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 한국 수상자 왜 안나올까 ▼ 첫째, 한국인의 교육관이 조선시대와 거의 다름없다는 것이 문제다. 마을의 서당을 나와 향교를 거쳐 성균관에 진학하고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 조선시대 엘리트교육의 코스였다면 요즘은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에 입학하는 것이 최상의 코스가 되어 있다. 모처럼 과학고 외국어고와 같은 특수학교를 세워 각 분야에서 수재 양성에 힘쓴다고 했지만 현실은 「일류대학 진학」을 목표로 해 본래의 목표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들 학습의 공통점은 창의성보다는 암기 중심이며 주어진 지식을 적절하게 인용하는 능력에 주력한다는 점이다. 노벨상이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것과는 정반대로 강한 개성과 창의력에 있으므로 한국적 수재가 노벨상의 수준에 도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두번째 문제점은 한국사회의 「감투」지향성이다. 요컨대 「칼자루 쥐는 자리」를 선호하는 것이다. 근대국가의 원칙은 행정 사법 입법의 3권 분립에 있다. 상식적으로는 서로가 경쟁하며 일부 세력의 독주를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나 실제로는 인재가 여러 분야에 분산됨으로써 과다한 경쟁을 피할 수 있고 사회가 고루 발전한다. 그와 같은 뜻에서 사회에서는 재력 권력 명예가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선시대에는 권력이 돈과 명예까지도 차지했다. 이 폐단이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대학교수가 정치가가 되겠다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에서는 키신저와 같은 명교수도 일단 행정부에 들어가자 하버드대에서는 그 대학의 명예를 걸고 키신저의 대학 복귀를 반대했다. 작은 골짜기에 일시에 바람이 몰아치면 강풍이 생기는 것처럼 우리 사회 모두가 권력을 향해 돌진함으로써 사회는 필요 이상으로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교수는 명교수로서 명예를 얻는 것이 최고의 바람이어야 한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이 사실을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통해 따끔하게 경고했다. 바람직하지 못한 이런 풍조는 어김없이 대학에도 반영되어 상당수의 교수가 총학장을 비롯한 학내의 갖가지 행정직을 탐내고 있다. 감투를 얻지 못하면 학문적으로 우수한 사람도 소외받는 풍토가 형성되니 대학의 진면목인 연구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 「감투지향 학문」극복을 ▼ 셋째가 대학에 서열이 매겨지는 것이다. 서울대만이 최고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단 한번의 시험으로 창의력의 등급이 매겨지지 않으며 각 분야에서의 천재적인 능력은 대학입시만으로는 가려지지 않는다. 대학은 저마다의 특성을 가져야 한다. 서울대를 대학원 중심으로 전환하고 같은 수준급의 대학이 전국에 고루 분산될 수 있도록 예산과 행정적인 뒷받침을 해야 한다. 미국에는 수많은 초일류대학이 각지에 있고 일본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동경대가 아닌 지방대학인 교토대에서 많이 나왔다는 점을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김용운<한양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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