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은 유엔의 날. 유엔의 날을 전후하여 그동안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 유엔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우리는 정부 수립, 6.25전쟁, 전후 복구사업 그리고 경제개발과정에서 유엔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으나 우리가 유엔을 위하여 한 일은 그다지 손꼽을 만한 것이 없는 듯하다.
▼ 유엔의 날에 맞는 감회 ▼
그런데 지난 8일 서울에서 우리가 주도해 왔던 국제백신연구소(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가 공식 발족됨으로써 그동안 유엔에 진 신세를 일부 갚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어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유엔은 오래 전부터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한 전염병을 퇴치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맡을 국제백신연구소의 설립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여 왔다. 세계적으로 매년 8백20만명의 개도국 어린이들을 포함한 9백만명의 어린이들이 말라리아 콜레라 등 전염병에 걸려 꿈도 피우지 못한 채 사라져가고, 다행히 목숨을 건진다고 하더라도 후유증으로 인해 평생 장애인으로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안타까운 처지에 있다.
이런 상황은 세계 유수의 백신회사들이 상업적인 이유로 개도국의 어린이용 백신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데 주로 기인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사회가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을 치명적인 전염병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계획과 행동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 둘 수 없다고 판단한 유엔은 1990년9월 「세계아동정상회의」를 개최하여 어린이용 백신개발운동을 범세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하는 결의를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아동기금(UNICEF) 세계은행(IBRD) 및 록펠러재단 등이 힘을 모아 어린이백신협의체(Children's Vaccine Initiative)를 설립하였다. 또한 어린이백신협의체가 제시한 계획을 실질적으로 이행하기 위하여 비영리 목적의 국제백신연구소 창설이 추진되었고 우리나라는 중국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5개국과 치열한 경합을 벌여 94년6월 연구소 유치에 성공하였다.
국제백신연구소의 공식 출범은 국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큰 의의를 지닌다.
첫째, 어린이의 생명을 빼앗고 있는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하여 우리의 주도 하에 국제사회가 공동보조를 취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연구소 사업에 이미 28개국과 WHO 및 세계적으로 저명한 백신학자들이 참여하는 등 국제사회의 호응이 매우 높다.
▼ 한국 주도의 국제기구 ▼
둘째, 국제백신연구소는 우리나라가 최초로 유치한 국제기구로서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세계화의 구체적 결실이며, 앞으로 새로운 국제기구를 유치하고자 할 때 유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엔 등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야 했던 우리나라가 역경을 딛고 발전을 거듭하여 국제적으로 중요한 인도적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이러한 기여가 단순히 물량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세계적인 백신연구소를 우리 땅에 세워 주운영자가 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하겠다.
52번째 유엔의 날을 맞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종하 (외무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