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축구팀이 4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큰 일을 해냈다. 이제 98년 월드컵대회에서 16강에 진출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축구에 앞서 한국 김치가 프랑스행 비행기에 먼저 오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농협김치는 지난 8월부터 에어프랑스 기내식으로 납품되어 왔고 9월에는 월드컵 공식식품으로 지정되었던 것이다.
▼ 「기무치」에 역전극 ▼
우리는 지금부터 3년전 10월의 맑은 하늘 아래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국민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김치종주국선언」이라는 조촐한 행사를 가졌다. 그 다음해인 95년에는 미국 뉴욕에 있는 메도파크에서 미주 교민 수십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추석맞이 행사에서 우리나라가 김치종주국임을 재차 선언한 바 있다.
우리 고유의 음식인 김치가 우수한 식품이라는 것을 일찍이 인식한 일본사람들이 김치에 대해 우리보다 깊이있게 연구하고 있고 국제시장에서 「김치」 아닌 「기무치」가 더 알려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느꼈던 위기의식이 이러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바로 지난해 애틀랜타에서 올림픽이 준비되고 있을 때 동아일보 기자로부터 일본이 「기무치」를 공식식품으로 지정받으려 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이미 김치종주국임을 천명한 바 있는 우리가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애틀랜타 지역의 교민들과 우리 영사관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노력한 결과 갖은 우여곡절 끝에 애틀랜타올림픽준비위원회 관계자들이 한국의 김치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한국의 농협김치가 아시아에서 납품하는 유일한 공식식품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김치를 맛본 준비위원들이 「엑설런트」에서 「퍼펙트」로, 마지막에는 「빅히트」라고까지 평가해주었고 각국 선수들에게 인기를 끈 것은 물론 서먹서먹하던 남북한 선수들도 입맛나는 농협김치 앞에서는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후 우리는 김치를 유럽의 여러 박람회에 출품하기 시작하였고 에어프랑스의 기내식으로 김치를 사용할 수 있도록 문을 두드렸다. 프랑스 사람들과 상담할 때는 그들이 냄새 때문에 꺼릴 것을 염려해서 프랑스의 유명한 치즈를 별도로 준비하였다. 만약 김치의 냄새를 문제삼을 때는 치즈의 독특한 냄새를 그 사람의 코에 대고 맡아보도록 하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은 냄새보다 맛을 선택했다. 비행기에 탑승하는 고객의 취향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에어프랑스의 기내식 납품을 계기로 다른 항공사들과의 계약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 프랑스 거쳐 세계로 ▼
여기에 힘을 입어 마침내 98년 프랑스월드컵의 공식식품으로 선정되고 우리나라 미국 일본 등지에서 농협김치에 월드컵상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월드컵조직위원회 사무국 사람들은 김치가 그렇게 인기 있는 것인 줄 미처 몰라서 월드컵상표 사용권을 너무 싸게 계약했다고 후회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한국의 김치는 이제 월드컵과 함께 세계적인 식품이 된 것이다. 김치 종주국 선언 3년만에 이루어진 뜻깊은 일이라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낀다.
차범근감독이 이끄는 우리 태극마크의 축구선수들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열광적인 국민의 성원 속에서 프랑스의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듯이 우리 농협의 월드컵 김치도 이제 파리로 갈 것이며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원철희<농협중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