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 당선자를 향한 찬사와 덕담이 쏟아지고 있다. 새 대통령에 바라는 주문도 많고 기대도 크다. 그럴만도 하다. 숱한 정치 탄압과 고난의 연월 끝에 이룬 정권 교체이니 말이다. 야당은 집권의 기쁨에 들떠있고 소외계층은 「잃은 세월」에의 보상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나라의 꼴을 보면 당선과 덕담을 즐길 겨를이 없다. 국가의 신뢰는 크게 떨어졌고 경제는 파국직전이다. 국민은 사기를 잃은채 실업과 물가고의 공포앞에 떨고 있다. 새 대통령이 이 총체적 난국을 헤쳐나가고 국가적 과제를 슬기롭게 풀어나 가려면 국민의 협력이 절실하다. 당선자의 첫 과제는 국민통합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
▼ 먼저 마음을 비워야 ▼
당선자가 국민의 힘을 모으려면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한다. DJ는 적지않은 비토(VETO)세력을 안고 있다. 검 경 안기부 등 공권력과는 항상 긴장과 대립의 연속이었다. 관료 조직과도, 재계와도 원만한 관계는 아니다. 국회에는 거대야당이 버티고 있다. 무엇보다 그를 뽑지 않은 반(反)DJ보수층 등 60%의 국민은 「김대중 대통령」을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들은 혹시 김당선자가 「한(恨)의 정치」를 펼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김당선자 만큼 정치탄압의 희생자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권력에 핍박받던 입장에서 권력자가 됐을 때 누구보다도 그 부당함을 깨우치고 고쳐나갈 수 있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이제 김당선자는 이들 비토그룹 및 견제세력들과 손을 잡고 타협해야 한다. 서로 싸우고 대립하면 국가가 불행해진다. 여기에는 그의 아량과 포용력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망된다. 「한의 정치」를 딛고서 「열린 정치」로, 독선의 벽을 넘어 투명한 대화와 토론의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한의 정치란 반드시 정치보복의 측면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참고 준비했던 기간이 길었기에 잘 하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 자신의 생각만을 관철시키려는 정치적 과욕이 앞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민은 더이상 인기에 연연해하는 대통령을 바라지 않는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숱한 일만 벌여놓고는 마무리를 못해 국정혼란을 초래한 끝에 나라를 거덜낸 뼈아픈 교훈을 당선자는 되새겨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는 국민에게 많은 고통의 감내를 요구한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 걸쳐 국민과 사회에 고통을 가져올 입에 쓴 정책도 과감히 추진하고 국민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야당만 해온 김당선자와 그 측근에 대해 수권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동서의 인재를 고루 쓰고 사방의 중지를 널리 모으는 열린 정치 뿐이다. 김당선자는 한정된 한 지역의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 오늘 우리가 경제난국을 맞긴 했으나 우리 경제를 선진국의 문턱에까지 끌어올린데는 군사정권 이래의 영남세력과 보수층을 주축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이 바탕이 되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선거에 이겼다 해서 특정지역이나 기득권층, 중산층을 적대시하거나 의식적으로 배제한다면 새로운 갈등과 대립이 있을 뿐이다.
▼ IMF시대 극복 시급 ▼
김당선자에게는 시간이 없다. 일의 선후를 가려 난국극복을 위한 긴급조치들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우선 IMF관리체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경제회생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필요하면 미국도, 일본도 가야한다.
당선자는 이제 「대선 거품」을 빨리 거둬야 한다. 당선을 위해 던져놓은 많은 약속과 이질적 요소들을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 정국안전에 걸림돌이 된다면 DJP합의도 과감히 깨는 결단도 필요하다. 정당간의 약속은 「당신들끼리의 약속」일 뿐 국민과의 약속이 될 수는 없다. 정권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으로 부터 국정을 위탁받은 것이다. 김당선자는 겸허한 마음으로 나라와 국민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국민은 또 다시 추락하는 대통령의 꼴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정구종(本報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