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노트]김세원/「거품」속의 진실

  • 입력 1997년 12월 25일 20시 56분


성탄절이라는데 캐럴이 들리지 않는다. 화려한 네온사인도,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연말이면 차와 인파로 뒤덮이던 번화가도 한산하다. 『정말 성탄절 맞아』 이런 질문이 나올 법하다. 예전같으면 망년회 약속들로 빽빽히 메워졌던 12월의 달력이 깨끗하다. 감원태풍, 도산의 소용돌이에서 자리 보존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안부전화가 고작이고 누구도 좀처럼 『술 한 잔 하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모처럼 친구들끼리 만나더라도 미래에 대한 근심걱정이 확대재생산될 뿐 별다른 묘안이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뒤바뀌는 환율과 주식시세가 우리 경제의 추락상황을 실감나게 「생중계」하는 장면을 매일 지켜보아야 하는 일은 정말 고통스럽다. 우리의 경제규모, GNP, 그리고 우리의 자존심과 삶조차도 시시각각으로 값을 매기며 평가절하하는 이 절박한 경제위기가 가져다 준 뜻밖의 선물이 있다. 거품에 휩싸여 보이지 않던 우리 사회와 자신의 참모습을 돌아보게해준것이다. 생각해보니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을 쓰지않은 지가 한참됐다. 바쁘다는 핑계로 학교때 은사를 방문하거나 미화원아저씨 신문배달소년 선물을 챙긴지도, 가까운 사회복지시설을 찾아본 지도 정말 오래다. 전자수첩을 쓰다보니 새 수첩에 전화번호를 옮겨적느라 손때 묻은 낡은 수첩을 뒤적이며 한 해를 정리하는 습관도 잊고 있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해외로 휴가여행을 다녔고 해외 유명브랜드제품이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으며 시장갈 때도 자동차를 몰고 다녔던가. 술을 마셔도 양주여야 하고 전세를 살면서도 자동차와 휴대전화는 있어야 하고 겨울외투는 모피제품이어야 했나. 삶의 질은 지갑이 두둑해진대서 높아지는게 아니다. 이렇게 값비싼 레슨비를 치러야만 우리가 잃어버린 청빈(淸貧)의 전통을 되찾을 수 있는건가. 그러나 어쩌랴. 편안할 때는 신이 양심을 통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그래서 신은 우리에게 고난을 보낸다. 고난은 인간의 잠든 감각을 깨우는 신의 고함이다. 성탄절밤 늦도록 썰렁한 거리를 지켜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성경구절이 새삼스레 가슴을 친다. 정말이지 우리에겐 고해성사가 필요하다. 김세원<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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