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안타깝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외람된 자만이며 오류였던가. 그것을 오늘 10㎞ 지점에 서서 확인한다.
물결지어 달려오는 마스터스 참가자들의 출렁임을 보면서, 절절하게.
동아마라톤, 1931년 우리 선조들이 이 대회를 시작하며 식민지 젊은이에게 쏟아부었던 “조선의 아들들아, 그 무엇에도 굴하지 말아라”하던 그 초지(初志)가 이어져 저렇게들 달리는구나!
▼ 마라톤 역사의 새 이정표 ▼
레이스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나는 무엇을 생각했던가. 달리기의 천재들이 수놓는 마라톤이 아니라, 달리기가 즐거운 모든 이들의 마라톤 대회, 금년의 동아마라톤은 마스터스 대회의 찬란한 성공과 함께 그렇게 한국마라톤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놓았다는 것이었다. 크고 엄숙한 그리고 기쁘기만한 이정표.
늘 그랬었다. 대회 당일 새벽에 눈을 뜨면 흐리고 바람부는 날씨를 걱정했었다. 그러나 오늘 새벽 하늘은 씻어놓은 듯 맑았고, 바람은 마악 피어나는 나뭇잎조차 흔들지 않았다.
그러나 늘 그렇게도 기다리곤 했던 이 해맑은 날씨가 바로 선수들의 레이스에 마의 복병이 될 줄이야.
출발 전에서부터 레이스가 끝난 뒤까지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하며 ‘북한 옥수수심기 범국민운동’을 벌인 경북대 김순권 박사.
바통처럼 옥수수를 손에 든 선수복 차림의 그와는 저 먼 나이지리아 취재에서도 만났던 사이다. ‘갑시다. 북한에도!’하며 내 손을 잡던 그는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불우이웃돕기 기금을 마련하기로 한 ‘1미터 1원 사랑의 마라톤’ 참가자들을 바라보자면 콧날이 시큰해졌고, ‘H.O.T위에 나는 놈 없다’라고 쓴 커다란 걸개를 내붙인, 좀 심했다 싶은 극성팬의 모습도 싱그럽기만 했다.
감만여중 1년생 안연희양이 삼촌 안석정씨의 배번을 정성들여 붙이고 있는 한쪽에서는 배번 5032,3의 초등학생 딸과 아들에게 “메달과 기증서 받아와야 해”하면서 “엄마는 저어기 있을 거야”하며 젊은 아빠가 가리키는 스탠드에는 카메라를 든 엄마가 웃으며 지켜보고 있기도 했다.
5㎞ 코스에 도전한 엄마를 출발선으로 내보내며 정동철씨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무엇이 그리 좋은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 희망의 함성 古都에 메아리 ▼
레이스를 마친 선수들에게 “수건 받아가세요”를 외쳐댄 자원봉사자 선덕여중 3년 성새롬 양과 그 친구들, 하프 코스를 뛴 아버지 이화균씨와 5㎞를 어머니 표명옥씨의 손을 잡고 뛴 딸 자연양은 결승선에서 말했다. “기뻐요.”
무엇을 더 ‘표현’하랴. 이 기쁘다는 말과 그 뒤에 깔린 희망의 함성을.
경주, 그 천년고도의 ‘지붕없는 박물관’을 달린 선수와 함께, 그렇게 우리는 시름을 잊었다.
그리고 하나의 제안을 하고 싶다. 내년 마스터스 대회에서는 역대 동아마라톤의 우승자들이 함께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제49회 우승자 박원근도 55회의 이홍렬도…. 그것은 또 하나 한국마라톤의 ‘움직이는 앨범’이 되지 않겠는가. 아,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내년이면 ‘일흔’을 맞을 동아마라톤.
한수산<작가·세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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