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너무 오랫동안 두통 때문에 고생을 했습니다. 양약도 먹어보고 한약도 먹어보고 침도 맞아보고…. 이런 저런 치료를 다 해보았지만 낫지 않네요.
수술이든 무슨 방법이든 좋으니 한번에 낫는 방법이 없을까요?”
외래 진료나 컴퓨터 통신을 통한 상담을 하다보면 하루에도 몇번씩 이런 주문을 받는다.
이런 주문을 자주 받다보면 때로는 이 분들이 나를 의사로 여기는지, 아니면 마술사로 여기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하기야 나도 때때로 마술사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치료로든 쉽게 낫기 힘든 난치성 환자를 만날 때,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일시에 완치하기 어려운 병을 갖고 있는 환자를 만날 때, 그리고 최근 부쩍 늘어난 치료비 없는 환자들을 만날 때면 나도 마술사가 되고 싶은 심정이다.
올해 들어 치료비가 없어 계속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 약을 복용할 수 없다고 하거나 수술이 필요한데도 자꾸 수술을 연기하는 환자가 부쩍 늘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주부들을 만난다.
이런 난감한 경우를 만날 때면 나도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처럼 마술을 부려서라도 이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싶은 심정이다.
마술과도 같은 효과를 원하는 환자들의 기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현실은 기대같지 않은 것을 어찌하랴.
나는 그들에게 그들이 갖고 있는 문제의 성질과 최선의 방법을 설명한다.
때로는 나보다 더 경험이 많은 다른 전문가에게 의뢰한다. 그런데도 전문가의 처방보다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남들이 좋다는 치료방법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이런 행태를 ‘치료자 장보기(Healer Shopping)’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대개 자의식이 약하고 자신감이 결여되거나 현실 직시 능력이 부족하여 자신의 문제를 직접 대면하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과적으로는 합리적인 방법을 외면하고 마술과도 같은 방법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게 된다.
사람들이 마술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질병 치료에서만이 아니다. 소위 건강 비결도 마찬가지다. 장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생 내내 건강하고 활동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적게 먹고(小食), 많이 움직이고(多動), 금연(禁煙)하고, 절주(節酒)하는 생활 습관이다. 이것은 현대의 여러가지 대규모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진 사실이다. 이 평범하지만 합리적인 건강 비결을 생활화하지 않으면서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술이 아니라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걷는 상식이요, 가야할 길을 올바로 지도해주는 믿음직한 전문가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눈을 뜨고 나면 갑자기 경제 문제가 해결되는 방법을 찾아서는 안된다. 지금은 마술가가 아니라 어떤 분야이든 그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과 실력을 갖춘 양심적인 전문가의 처방을 따라야 할 때다.
김철환(인제의대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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