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노트]정성희/「비아그라 심리」

  • 입력 1998년 6월 13일 19시 40분


작년 세계 과학계의 쾌거가 복제양 ‘돌리’였다면 올해의 화두는 단연 비아그라다.

돌리가 생명복제에 대한 윤리논쟁이라는 고차원적 논란을 불렀던 데 비해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는 성생활의 혁명이라는 보다 ‘원초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한알에 10달러씩 한다는 이 파란색 약은 국가 인종 종교 이념을 막론하고 전세계의 고개숙인 남성들에게 하나의 복음이 되었다.

이 알약을 구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많은 남성들이 벌이는 행보는 차라리 눈물겹다. 돈벌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일본에서는 하와이에 가서 관광도 하고 비아그라도 사오는 ‘비아그라 관광단’이 생겨났다. 독일에서는 비아그라 처방이 의료보험 급여에 포함되는 바람에 보험업계가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는 소식이다.

약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빠질 리가 있겠는가. 남대문 수입상가에는 한알에 10만원씩 하는 비아그라가 없어서 못판단다.

비아그라라는 말도 ‘나이아가라폭포 보다 더 정력적(Vigorous)’이라는 뜻이라니 모든 남성의 염원이 함축된 작명(作名)이다.

비아그라는 노화라는 자연현상에 대한 인간의 또 하나의 도전이다. 피임약이 성(性)과 임신을 분리시키면서 여성의 생활과 의식에 변화를 가져왔듯이 비아그라는 남성의 라이프스타일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현상은 의사의 처방전을 받을 때는 온갖 엄살을 떨어대던 많은 남성들이 정작 약국이나 암시장을 통해 비아그라를 구입할 때는 자신이 사용할 것이 아니라고 우겨댄다는 점이다. 약으로 자연의 섭리마저 바꾸는 세상이지만 정력이 뒤진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은 남성들의 허영심만은 약으로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정성희<국제부>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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